아파트 오르는 곳만 오르고 팔리는 곳만 팔린다

  • 입력 2009년 6월 17일 19시 07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대기업 임원 박모 씨(45)는 요즘 집값 생각만 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올해 들어 강남권 집값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박 씨가 사는 타워팰리스2차 225㎡는 올 초(27억 원)보다 5억 원이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박 씨는 "예전에 강남 집값이 오를 때는 타워팰리스부터 뛰었는데 이번에는 양상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4월에 재건축 추진 아파트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43㎡를 7억5000만 원에 매입한 회사원 허모 씨(40)는 최근 집값이 8억1000만 원까지 오르자 쾌재를 부르고 있다. 허 씨는 "계약 때 대출 부담이 커 고민이 많았는데 집값이 많이 올라 다행"이라고 말했다.

최근 온기가 확산되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올 들어 서울 강남 3구의 아파트 값이 크게 오르고 수도권 분양시장이 들썩이고 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오르는 곳만 오르고 팔리는 상품만 팔리는 현상이 뚜렷하다.

강남권은 재건축 아파트만 강세

강남 서초 송파구 등 강남 3구는 올 들어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에 속한다. 부동산114와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강남 3구는 이 기간에 평균 4.68% 올라 강동구(8.05%)와 경기 과천시(11.25%) 다음으로 상승폭이 컸다. 서울 전체 평균 상승률(1.96%)을 훨씬 뛰어넘는 오름세였다.

하지만 강남 3구에서는 재건축 아파트만 불티나게 팔렸다. 올 들어 12일까지 강남 3구의 재건축 아파트는 평균 11.33% 급등했다. 송파구 주공5단지 112㎡가 올 초 9억2500만 원에서 11억3000만 원으로 22.2%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강남구 압구정동 구현대 3차 109㎡도 11억7500만 원에서 13억4000만 원으로 14% 상승했다.

하지만 강남 3구의 일반 아파트는 연초 이후 평균 2.78% 오르는 데 그쳤다. 강남 단지들 중에는 올 초보다 가격이 떨어진 곳도 상당수 있다.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1차 116㎡는 13억5000만 원에서 11억5000만 원으로 14.8% 하락했고 도곡동 도곡렉슬 225㎡는 39억5000만 원에서 36억 원으로 8.9% 내렸다. 수도권 전체를 봐도 올 초 이후 12일까지 서울(1.96%)만 오르고 경기(―0.57%)와 인천(―1.11%)은 내렸다.

미분양도 혜택 제시해야 팔려

미분양 아파트의 판매 상황도 수도권과 지방이 다르고, 수도권 안에서도 단지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한화건설 금호건설 등 13개 주요 건설사들을 조사한 결과 수도권의 미분양 물량은 지난해 말 3667채에서 이달 초 2059채로 43.9% 줄었지만 지방 미분양은 1만861채에서 8614채로 20.7%(2247채) 감소하는데 그쳤다.

수도권에서도 파격적인 혜택을 내세운 곳에는 수요가 몰린 반면 그렇지 않은 단지는 외면당하고 있다. 경기 고양시 덕이지구에서 '하이파크시티 신동아파밀리에'(총 3316채)를 분양 중인 신동아건설은 3월 중순 '입주 때 프리미엄 3000만 원을 보장한다'고 공언한 덕택에 1500여 채이던 미분양 물량이 700여 채로 줄었다. GS건설이 경기 고양시 식사지구에서 분양하는 '일산자이 위시티'(총 4683채)도 상반기에 계약금 3500만 원 정액제 등 갖가지 할인혜택을 내놓고 단지 내 국제고교 유치 등 특별한 호재가 추가되면서 계약되지 않은 비율이 올 초 40%에서 현재 5%로 급감했다. 반면 경기 용인시 성복동에서 분양되는 H아파트(총 2157채)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200만~300만 원 가량 비싼 데다 추가 혜택도 없어 2월 초 1500여 채였던 미분양 물량이 지금까지 100채밖에 줄지 않았다.

분양시장도 인천 청라지구 등 수도권 택지개발지구는 1순위에서 평균 수십 대 1의 높은 경쟁률로 마감됐지만 지방은 냉기가 여전하다. 이달 초 전북 군산시 미룡동에서 130채가 분양된 M아파트는 3순위까지 청약자가 한 명도 없었다. 부동산컨설팅업체인 현도컨설팅 임달호 사장은 "이달 들어서는 지방에서도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사겠다는 문의가 자주 오고 있다"며 "경기회복 전망이 불투명하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재건축 아파트 등 차익실현 가능성이 확실해 보이는 부동산에만 투자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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