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투데이]美-中철강 분쟁은 보호무역 전쟁의 서막

  • 입력 2009년 6월 2일 02시 59분


철강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이 철강제품을 비롯한 일부 수출품목에 대해 수출세 인하와 관세 환급을 통해 사실상의 보조금을 지급하자, 미국은 곧바로 중국산 철강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가뜩이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바이 아메리카’ 정책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던 중국 역시 미국 제품에 보복관세를 물리며 정면 대결을 선언했다.

그런데 문제는 ‘미-중’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러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철강 분쟁이 확산되고 있다. 과잉공급 때문이다. 철강은 글로벌 가수요가 넘쳤던 지난 10년간 최장기 호황을 누려온 업종이다.

2000년 초 적절한 경기조정을 거치지 못하고 세계경제가 지속적으로 덩치를 키우면서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철강재를 기초로 하는 업종에 거품이 일었다. 철강업체들은 생산시설을 급격히 늘리며 엄청난 잉여설비를 떠안게 됐다. 철강 같은 장치산업은 가동률이 탄력적이지 못해 설비투자를 할 때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세계 철강회사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5000개 이상의 철강회사가 있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렸다. 철강수요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강 같은 거대 장치산업은 소비가 위축될 때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 그 결과 글로벌 경기위축의 타격을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받은 것이다. 이미 중국의 상당수 철강회사는 공장을 돌리면 돌릴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에 빠져 있다. 호황기에는 문제가 없었던 차입금과 낮은 생산성이 불황기에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 결과 중국 철강회사들은 저가 덤핑에 나섰고, 이는 전 세계 철강가격의 하락 압력을 높여 미국, 일본, 한국의 철강회사에도 엄청난 압박이 되고 있다. 특히 유에스스틸의 경우 고로 2개가 멈출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져 오바마 행정부의 두통거리가 되기도 했다. 시장원리대로면 중국 철강산업의 절반 이상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요원하다. 중국의 특수한 사정 때문이다. 하나는 연 2500만 명이 신규로 취업시장에 나오는 가운데 기존 일자리를 없애는 구조조정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장치산업의 대주주는 정부, 그것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군부, 공산당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시장원리에 따른 구조조정이 아닌, 정치논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중국 철강회사 중 상당수는 정부의 정책자금으로 연명하는 한계기업이 되었다. 공장이 가동되면 될수록 부채는 많아지고 은행은 부실화되고 있다.

이 점은 인도도 마찬가지다. 경기 호황기에 설비투자를 급격히 늘린 인도의 철강회사들도 같은 어려움에 빠져 있다. 결국 유일한 해법은 구조조정이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쉽지 않고 덤핑과 보조금으로 문제의 불씨만 키워가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철강으로 시작된 무역 분쟁이 다른 품목에 대한 보호무역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결국 금융위기 후 세계경제의 화두는 ‘구조조정’과 ‘보호무역’이 될 것이라는 점을 지금 미-중 철강전쟁이 보여주고 있다.

박경철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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