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 원자재 ↑… 한국경제 다시 시험대에

  • 입력 2009년 5월 14일 02시 57분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달러화 약세는 경제 안정기에 나타나는 현상이고 원자재 가격 상승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다는 의미여서 글로벌 경기가 회복기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지나친 달러화 약세와 원자재 가격 상승은 한국의 경상수지 적자 반전과 물가 급등이라는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 있어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상황 뒤바뀐 달러와 유가

유럽연합(EU) 일본 영국 등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3일(한국 시간) 82.0으로 4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세계 금융계의 대형 전주(錢主)들이 글로벌 경기 회복을 기대해 안전자산인 달러화에서 자금을 빼고 있다는 의미다. 최호 산은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한 만큼 달러화가 본격적으로 약세로 돌아서는 시점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달러화에서 빠져나온 자금 중 상당 규모는 원유 구리 금 등 원자재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19개 원자재 가격 추이를 나타내는 ‘로이터제프리 CRB지수’는 13일 0.4% 올라 5개월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것은 원유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의 6월 인도분 가격은 13일 장중 한때 배럴당 60.08달러까지 올라갔다. WTI 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선을 넘은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처음이다. 2월 12일 배럴당 34달러에 불과했던 WTI 가격이 3개월 만에 76%나 오른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일부 투기세력이 움직이면서 생겨난 결과’로 본다.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면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기 마련인데 이럴 경우 실물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으로 보고 원유에 ‘베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옥수수 가격도 4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으며 금 가격은 6주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값도 31.1g(1온스)당 923.90달러로 마감하며 4월 1일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물가 상승, 경제회복 걸림돌 우려

○ 원자재 가격 상승 양면성 주목해야

일부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이 오르게 된 원인을 투기세력 외에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가의 수요가 늘고 있다는 대목에서 찾고 있다. 실제 세계 2위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은 지난달 1617만 t(하루 39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해 전년 동기보다 13.6% 늘렸다.

또 중국은 지난달 구리를 지난해 4월보다 72.7% 많은 39만9833t 수입했고 같은 기간 중국의 알루미늄 수입량도 472.8% 급증했다.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선 일단 반가운 소식이다. 그동안 환율 효과 덕분에 수출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전했지만 글로벌 경기가 계속 부진하면 하반기부터는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65달러 선까지 오를 때까지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 기여하는 효과가 커서 한국의 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수준을 넘어서면 무역수지가 나빠져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료는 “다시 고유가 상황이 닥치면 한동안 잊고 있던 ‘고유가 대비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을 서랍에서 꺼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에 물가가 크게 오를 수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124원일 때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르면 소비자물가가 2.0%포인트 상승한다. 1차 오일쇼크 당시인 1974년 물가상승률이 24.8%까지 치솟았던 상황까지는 아니겠지만 서민 경제에 깊은 주름살을 패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각국 정부가 풀어놓은 유동성에 힘입어 글로벌 경기가 약간 풀렸지만 달러화가 폭락하고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른다면 한국 경제가 다시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며 “고유가에 대비해 한국 기업들이 장기적인 에너지 확보전략을 세우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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