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경제성장땐 큰 충격 없지만 ―4% 이하땐 부실여신 크게 늘어나

  • 입력 2009년 5월 13일 02시 54분


금감원, 14개 시중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기업 구조조정땐 부실 커져
은행 자본금 미리 늘릴 필요
PF-파생상품 손실도 변수

14개 시중은행이 금융감독원이 정한 두 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실시한 한국판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는 당초 우려와 달리 국내 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미국에 비해 안정적인 상태임을 보여준다. 금융당국이 경기침체로 은행의 부실채권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4조 원에 이르는 자본확충펀드를 선제적으로 투입해 기초체력을 키워놓은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당국은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은행의 손실이 어느 정도 늘어나긴 하겠지만 실물 부문의 부실이 금융권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 보수적 잣대로 평가

금감원이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제시한 ‘시나리오1’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올해 성장률을 ―4.2%로 설정한 대목이다. 이는 이달 초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4%)보다도 0.2%포인트 낮은 것이다. 상황이 다소 호전되는 것을 전제로 한 두 번째 시나리오의 성장률 가정치도 ―2.5%로 정부 전망치(―2%)보다 0.5%포인트 낮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제 금융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국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 은행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살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이 투자한 파생금융상품의 수익이나 손실 규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환율도 최악의 시나리오에선 달러당 1570원을 가정했다. 이는 올해 평균 환율 수준인 1387원보다 180원가량 높은 수치다. 최근의 환율 급락세와는 어긋나지만 그만큼 보수적인 시각에서 따져보자는 취지다.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급락할 경우 이 금리와 연동돼 있는 부동산담보대출의 금리가 크게 떨어져 은행들의 손실이 커진다. 현재 91일물 CD금리가 2.4%를 넘는 상황에서 CD금리 1.5∼2.1%를 전제로 분석한 것은 매우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금감원은 직접투자상품의 수익에 영향을 주는 코스피도 지금보다 300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을 테스트의 전제조건으로 삼았다.



○ “웬만한 충격에는 영향 안 받아”

금감원의 지침에 따라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면서 은행들이 가장 걱정한 것은 성장률 하락으로 은행 부실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성장률 둔화로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개인의 수입이 감소해 빚을 갚지 못하는 고객이 늘면 부실여신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A은행은 성장률을 ―2.5%로 설정했을 때 큰 충격이 없지만 ―4.2%로 가정하고 테스트했을 때는 예상 부실 규모가 2조8000억 원까지 늘었다. 은행들은 고객이 3개월 이상 갚지 못하고 미룬 고정 이하 여신에 대해 연체 기간에 따라 빌려준 돈의 20∼100%를 떼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충당금을 적립하는데 성장률이 곤두박질치면 이 같은 손실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B, C은행도 올해 생길 수 있는 손실에 대비한 충당금 적립액으로 1조 원 안팎을 쌓을 예정이지만 성장률이 ―4% 아래로 떨어지면 수천억 원의 추가 적립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손실 규모가 커진다고 해도 국내 은행의 건전성은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이 올 3월 자본확충펀드의 지원을 받아 1000억∼1조 원씩 자본을 미리 늘려 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나리오가 가정한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0%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구조조정에 대비할 필요

금융당국은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대체로 만족하면서도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부실 규모가 커질 수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은행 자본을 늘리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할 것으로 진단했다. 구조조정에 따른 부실 규모가 100조 원 안팎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금융계 일각의 전망이 현실로 나타나면 은행의 현재 자본금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파생금융상품의 손실 규모를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잠재 불안요인이다. 특히 PF 대출 부실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져 은행들이 서로 대출금을 회수하려 들면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부도 기업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올해 하반기쯤 기업 부실이 새로운 뇌관으로 부각될 수 있다”며 “대기업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충당금을 넉넉히 쌓는 등 건전성 관리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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