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차 일감나누기 현장 가보니

  • 입력 2009년 5월 7일 02시 57분


노사 상생 1호차6일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 내 투싼 생산라인에서 혼류생산을 통해 만들어진 첫 번째 아반떼가 나오자 임직원들이 축하의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제공 현대자동차
노사 상생 1호차
6일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 내 투싼 생산라인에서 혼류생산을 통해 만들어진 첫 번째 아반떼가 나오자 임직원들이 축하의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제공 현대자동차
투싼 만들던 라인서 아반떼도 조립

일없던 2공장-넘치던 3공장 ‘윈윈’

혼류생산 설비 갖춰놓고도 노조 반대-밥그릇 싸움탓에

월급 30∼40% 줄었던 직원들“이번처럼 노사 합심했으면”

6일 오전 11시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 1라인 출고장. ‘투싼’과 ‘싼타페’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만을 생산해온 이곳에 검은색 ‘아반떼’가 최종 품질검사를 마친 뒤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바라보는 2공장 근로자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회사와 근로자들이 동시에 만족하는 ‘상생(相生)’이었다.

SUV 수요 급감으로 최근 조업 중단이 잦았던 2공장은 이날부터 주야 10시간씩 교대 근무에 들어갔다. 주문이 밀려 잔업과 특근까지 하던 3공장에서 아반떼 물량 일부를 나눠준 덕분이다. 일감 부족으로 6개월 가까이 급여가 평균 30∼40% 줄었던 2공장 직원들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1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생산하며 시장 변화에 따라 생산량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혼류(混流) 생산이 현대차에서도 시작됐다. 그동안 현대차는 노조의 반대, 공장 간 ‘밥그릇 싸움’ 등이 겹쳐 수백억 원을 들여 생산 설비를 갖춰 놓고도 혼류 생산을 하지 못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올해 임금·단체협상, 노조 지부장 선거 등을 앞둔 현대차가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생산 유연화 필요성 뼈저리게 느껴”

2공장 의장2부 조반장인 박민웅 씨(42)는 올 초 고교생인 두 아이의 학원교습을 줄여야 했다. 급여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3공장 동료에 비해 월 급여가 180만 원이나 적을 때도 있었다. 회사에선 올 초 170억 원을 들여 2공장에 혼류 생산 설비를 갖췄으나 물량 조정이 이뤄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박 씨는 “막상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라며 “생산 유연화가 왜 필요한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혼류 생산 시스템은 이미 선진 자동차 기업에선 수십 년 전부터 도입됐다. 하지만 국내에선 노조의 반대로 르노삼성자동차 외에는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한 근로자가 여러 차종을 만들면 노동 강도가 높아진다고 주장하는 노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대차는 한 공장 내에서도 생산라인 간 생산 차종을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자연히 현대차 전체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송천권 2공장장은 “혼류 생산과 자유로운 물량 이동 등을 통한 유연한 생산은 생산성을 높이면서 비용을 낮추는 큰 효과를 낸다”며 “자동차회사 간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면서 두 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한 회사는 생존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i30’와 아반떼를 생산하는 3공장의 생산 능력은 연간 39만 대. 올해 소형차 예상 수요는 48만 대 수준이어서 9만 대 정도의 초과 수요가 발생한다. 이번 물량 조정이 없었다면 주문을 받아놓고도 제때 차를 팔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아반떼는 최근 6개월 치 주문이 밀리기도 했다.

○ “더는 정치투쟁의 볼모 되지 않겠다”

오랜만에 되찾은 활기에도 불구하고 공장 근로자들 사이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다. 경제 여건이 불투명한 데다 올해 임·단협과 노조 지부장 선거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노조 계파 간 갈등과 민주노총 등 외부세력의 개입 등으로 또다시 일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2공장 라인의 한 조장은 “현장에서는 회사 상황을 이해하고 기대치를 많이 낮추고 있다”며 “올해는 민노총 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볼모로 끌려가는 상황이 쉽게 벌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30대 근로자는 “옆 공장은 잔업에 특근까지 하는데 우리는 일감이 없고 월급 차이가 커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무리한 파업을 자제하고 이번처럼 노사가 합심해 위기를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울산=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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