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Driven’]현대자동차 ‘에쿠스 VS460’

  • 입력 2009년 4월 23일 02시 58분


‘황제의 환골탈태’

4.6L 신형 에쿠스 편의 - 안전장치 세계 최강 변신

LS460과 맞먹는 가속력… 시속 180㎞에서도 ‘소음제로’

10년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내놓은 신형 ‘에쿠스’는 1999년 3월 첫 번째 모델을 선보인 지 꼭 10년 만의 야심작이다. 지난 10년은 한국 자동차 시장이 큰 변화를 겪은 시기다. 수입차의 국내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1999년 0.26%에서 지난해에는 6.04%로 23배나 급증했다.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07년 배기량 3.0L 초과 대형차의 경우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은 31.3%이며 판매금액 비중은 52.6%로 국산차를 이미 추월했다.

뛰어난 성능과 럭셔리한 디자인의 수입차를 이미 경험한 고급차 오너들에게 구형 에쿠스는 구매 목록 리스트에 들어있지 않았다. 초대형 세단 시장에서 애국심만으로는 수입차로 향하는 유혹을 잡아두기 힘든 시점이 됐다는 의미다. 그래서 현대차는 신형 에쿠스의 구동방식을 전륜에서 후륜으로 바꾸고, 지구상에 나와 있는 최첨단 편의장치와 안전정치를 거의 모두 투입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배기량 4.6L의 ‘에쿠스 VS460’을 일주일간 타봤다.

[화보]2009 ‘제 79회 제네바 모터쇼’
[화보]2009 서울모터쇼
○ ‘블링블링’ 화려한 디자인

신형 에쿠스는 권위보다는 화려함을 택했다. 검은색 차체라도 수입 경쟁차종에 비해 유난히 반짝거린다. 은색계열은 더욱 빛이 난다. 페인트에 빛을 반사하는 물질을 많이 넣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라디에이터그릴과 크리스털 느낌이 나도록 만든 전조등, 크롬이 도금된 각종 차체 몰딩도 빛의 산란도를 높여서 더욱 눈부신 느낌이 들도록 했다. 요즘 유행하는 ‘블링블링’ 스타일이다. 게다가 볼륨감 있는 범퍼와 사이드라인은 역동성을 강조한다.

초대형 세단으로는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위험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최근 해외 럭셔리 자동차브랜드의 초대형 세단들도 중후함을 내세우기보다는 화사한 화장을 하는 추세여서 국내 소비자에게 에쿠스의 다소 파격적인 디자인이 결국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3월 11일 판매가 시작된 이후 22일 현재까지 6000여 대가 계약판매됐다는 실적이 이를 방증한다.

실내는 외관보다는 화려하진 않다. 나무무늬목을 넓게 써서 다소 보수적인 느낌이다. 스웨이드 재질의 천장이 고급스럽긴 하지만 각종 버튼 및 공조장치의 디자인과 질감, 배열이 아직은 ‘럭셔리’를 흉내냈을 뿐 원초적인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감이 있다. 가죽 시트의 마감 상태도 타이트하지 못하고 헐렁한 느낌을 준다. 에쿠스의 한 단계 아래급인 ‘제네시스’까지는 ‘현대표’ 인테리어가 어느 정도 먹혔지만 에쿠스에서는 약간 한계를 드러낸다. 물론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현대차가 만들어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만족할 수준이기는 하다.

○ 스포티한 운동성능

정밀측정기로 테스트한 결과 V8기통 366마력 엔진과 독일 ZF의 6단 자동변속기는 2t에 이르는 차체를 정지상태에서 6.7초 만에 시속 100㎞에 올려놓았고 시속 200㎞까지는 24초가 걸렸다. 배기량이 같은 렉서스 LS460과 거의 같은 가속성능이다. 300㎞밖에 주행하지 않은 신차여서 길들이기가 끝나면 성능은 조금 더 올라갈 것 같다. 최고속도는 시속 250㎞로 제한장치가 작동했다.

핸들링은 ‘오∼∼ 제법인데’ 하는 감탄을 자아냈다. 쇼크업소버의 감쇄력과 차체의 높이를 속도와 도로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하는 액티브 서스펜션이 들어가 있는데, 흔히 대형 세단들이 보여주는 느슨한 핸들링 반응과 허무한 언더스티어 경향을 대폭 줄였다. 소형 스포츠세단처럼 날렵하지는 않아도 운전의 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고속 코너링에서도 높은 차체강성을 바탕으로 운전자의 의도를 충분히 따라줬다. 다만 독일산 경쟁모델에 비해서는 고속으로 올라갈수록 핸들링 반응과 안정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연료소비효율은 생각보다 좋았다. 부드럽게 시내 주행했을 경우 L당 7∼8㎞, 시속 100㎞로 정속주행하면 13.5㎞ 안팎을 달릴 수 있다. 과거 2.5L 중형차 수준의 연비를 보인다.

○ 최상의 승차감과 정숙성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엔진음은 제로에 가깝다. 시동을 거는 순간만 소음이 들릴 뿐 그 이후는 엔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이중구조 차음유리와 철저한 방음방진 설계로 주행 중에도 외부소음의 차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도서관보다 조용하다는 렉서스의 LS시리즈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시속 180㎞에서도 바람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런 정숙성과 함께 거친 길을 가도 잡소리가 나지 않으면서 노면의 충격을 잘 흡수하는 서스펜션은 일상적인 주행에서 최상의 승차감을 제공한다.

특히 뒷좌석은 동급 수입 럭셔리 세단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운전대를 기사에게 맡기고 편안한 자세로 뒤에 앉아 있으면 어느새 스르륵 눈이 감겨온다. 커브길을 돌아나갈 때나 차선을 바꿀 때 뒷좌석의 흔들림은 앞좌석보다 훨씬 적어서 또 다른 공간에 있는 느낌이다.

○ 다양한 편의장치와 첨단 안전장치

차선이탈경보시스템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넘으면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하고 있다고 판단해 경고음과 함께 안전벨트를 제법 강하게 당겨댄다. 특히 노란색 중앙차선을 넘으면 경고는 더욱 요란하다. 앞차와 자동으로 거리를 유지해주는 액티브 크루즈컨트롤도 제네시스에 이어 적용됐다.

운전자정보시스템(DIS)은 세계 최강이다. 다양한 차의 기능을 운전자의 입맛에 세팅할 수 있고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도 있다. 주식 정보에서부터 ‘고스톱’과 ‘포커’까지 준비돼 있다. 이를 조작하는 다이얼의 작동도 원조인 BMW의 ‘iDrive’보다 편리하다. 이 밖에 운전대 히팅 기능과 시트 안장의 길이 조절, 전동식 머리받침대, 자동 닫힘 도어, 프라이버시 글라스 등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기능이 빼곡히 들어가 있다.

○ 총평

모든 면에서 렉서스 LS를 벤치마킹한 흔적이 보인다. 승차감과 정숙성, 가속력, 연비가 LS와 거의 흡사하다. 편의장치는 오히려 앞선다. 렉서스보다 20년이나 늦게 럭셔리 시장에 진출한 현대차지만 브랜드 가치를 빼고 자동차만 놓고 평가해보면 불가사의할 정도로 진화의 속도가 빠르다.

제공된 시승차를 기준으로 볼 때 자동으로 닫히는 도어나 물체가 끼이면 자동으로 열리는 윈도가 간혹 오작동하는 경우가 발견돼 ‘트러블 슈팅’이 필요해 보이긴 했지만, 처음 만드는 초대형 럭셔리 세단으로서 훌륭한 완성도를 보였다. 신형 에쿠스는 종합적인 성능과 품질 면에서 분명히 ‘대한민국 최고의 자동차’라는 명예를 지킨 것으로 평가된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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