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집단도 구조조정

  • 입력 2009년 4월 12일 23시 17분


금융감독원이 재무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기업집단에 5월부터 강력한 자구책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기업들이 계열사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1월 말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무산되면서 얼어붙었던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말까지 45개 주채무계열 기업집단에 대해 △부채비율 △이자보상배율(이자비용 대비 영업이익 비율) △총자산회전율(총자산 대비 매출액 비율)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율 등 네 가지 지표로 재무 건전성을 평가한다고 12일 밝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채비율. 이 비율이 500%를 넘으면 다른 지표가 좋아도 불합격이 사실상 확정돼 금감원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해야 한다. 부채비율에 따라 나머지 세 가지 항목을 통과할 수 있는 점수대도 달라진다. 즉, 부채비율이 300~500%라면 다른 세 가지 항목의 총점이 100점 만점에 80점을 넘어야 합격이지만 250~300%라면 70점만 넘어도 합격이다. 부채비율이 200~250%면 60점, 150~200%면 50점, 150%에 못 미치면 40점이 합격점이다.

<<채권단이 작년 9월 말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2월에 약식 재무평가를 했을 때는 6곳 정도의 기업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지만 연말 기준으로 다시 평가하면 불합격 기업이 10곳 안팎으로 늘어날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작년 말 실적 악화로 핵심 계열사들이 적자를 낸 기업집단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각 그룹들은 최근 금융시장이 안정조짐을 보이자 금감원의 재무평가가 완료되기 전부터 계열사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 주채무계열 순위 5위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계열사인 금호생명뿐 아니라 서울고속도로 지분 등 보유자산을 팔아 유동성을 늘리려 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12월 테크팩과 올해 1월 주류사업 부문을 판 데 이어 방위사업 부문인 두산DST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지난해 말 인수한 미국 건설장비업체인 밥캣에 투입할 증자 대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동부그룹은 산업은행과 체결한 자구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자회사인 동부메탈을 팔기로 하고 산은 등을 대상으로 매각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대한전선그룹은 대한ST, 트라이, 한국렌탈 등의 자회사를 팔아 3000억 원 정도의 현금을 확보하기로 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건설 등 채권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도 연내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함에 따라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기업은 늘고 있지만 매각이 금방 성사되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여전히 심각해 대형 자본이 불확실성을 무릅쓰고 기업 인수에 나서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계 투자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매도자 측에서 기업 가치를 띄우려는 의도로 '인수자와 접촉 중'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질 만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는 자산 5조 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만든 사모펀드(PEF)가 기업을 인수할 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지분 범위를 15%로 제한한 현행 규정을 5년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을 M&A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조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재무구조개선 약정의 주요 내용은 계열사와 자산 매각이 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현재 지지부진한 M&A에 속도가 붙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홍수용기자 legm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