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권력 교체?… 美-英 지고 中-加 떴다

  • 입력 2009년 3월 24일 03시 04분


FT “中은행들 시가총액 1~3위 차지”… 10위권에 美3 英1개뿐

10년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금융수도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의 위상은 확고했다. 세계 20대 금융기관 가운데 미국이 11개, 영국이 4개를 차지하고 있었다. 1998년 합병으로 탄생한 미국의 공룡 금융기업 씨티그룹은 10년간 줄곧 시가총액 1위를 지키며 군림해 왔다.

지난해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직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 거대 은행 간 세력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가 관심사일 뿐이었다. 메릴린치를 집어삼킨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와코비아 인수전에 뛰어든 씨티그룹의 ‘제2차 금융대전’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상황은 변했다. 씨티그룹은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BoA도 메릴린치의 감춰진 부실이 예상 밖으로 큰 것으로 나타나자 ‘소화불량’을 호소하며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금융회사들의 판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각종 파생상품과 첨단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던 영미 금융회사들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 캐나다 호주 등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3일 보도했다.

▽미국 영국 공룡의 추락=17일 현재 시가총액 기준 상위 20위 내 미국 은행은 4개, 영국 은행은 1곳에 불과하다. 1조 달러 이상의 부실자산 상각과 자본 투입 과정에서 시장가치가 급락했기 때문.

10년 전인 1999년 시가총액 1509억 달러로 부동의 1위였던 씨티그룹은 46위(137억 달러)로 내려앉았다. 시가총액 1129억 달러로 2위였던 BoA도 11위로 떨어졌다. 4위였던 영국 로이즈TSB는 50위 밖으로 내려갔다.

10년 전 10위 체이스맨해튼과 28위 JP모간 등이 합병한 JP모간체이스는 4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합병 규모가 1750억 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현재 시가총액(945억 달러)은 초라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몸집을 불려왔던 모기지 회사들도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성조기와 유니언잭이 하강한 자리에는 오성홍기가 펄럭인다. 10년 전 50위 내에 한 곳도 없던 중국은 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은행이 1∼3위에 오르는 등 20위 내에 5개나 이름을 올렸다.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과 캐나다 로열뱅크오브캐나다가 10위 안에 올랐다. 보수적인 경영을 해 온 캐나다 은행들은 5곳이 50위 내에 들었다. 호주 브라질 은행들도 20위 내에 이름을 올리면서 면면이 다양해졌다.

▽시가총액 순위변동, 금융 패권교체로 이어질까=국가별 순위도 판이하게 달라졌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 영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일본 스위스 독일이 추격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5091억 달러로 미국(3781억 달러)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영국은 3629억 달러에서 1186억 달러로 급감하면서 캐나다(1228억 달러) 일본(1212억 달러)에 추월당했고 호주(1099억 달러)에 턱밑까지 추격당하는 신세가 됐다. 브라질(747억 달러)도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 등을 제치고 세계 금융 10대 파워로 부상했다.

이 신문은 금융회사의 시가총액 변화에 대해 지난 10년 동안 각국이 금융시스템을 얼마나 건전하게 관리했는지 보여주는 결과라고 덧붙였다.

영미권 은행들은 고수익을 노린 공격적인 운용과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워왔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부실이 커지고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리면서 자신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반면 금융위기에 노출이 적었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산을 운용해 온 중국 캐나다 호주 은행들이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물론 시가총액 순위 역전이 당장 세계금융시장 패권 변동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지금도 글로벌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여전히 영미권 금융회사다. 그러나 영미권 은행들이 과거처럼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 신문은 “금융위기가 진정되고 시장이 신뢰를 찾으면 시가총액은 회복되겠지만 최근에는 규제마저 강화되는 추세여서 영미권 은행들은 과거처럼 거대한 ‘글로벌 은행’의 형태를 띠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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