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이코노미’ 국내 현장을 가다]<5>현대-기아차

  • 입력 2009년 3월 23일 02시 56분


L당 21.3㎞ 고효율… LPI 하이브리드車로 승부수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는 실험실입니다. 특별히 소개해 드리죠.” 이달 초 방문한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자동차 남양기술연구소. 이기상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개발실장(상무)이 하이브리드 연구동에 있는 실험실 문을 활짝 열었다. 국가정보원이 정기적으로 연구원들의 컴퓨터를 점검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지만 일본의 그린카 현황을 취재한 동아일보에 국내 현주소를 보여주기 위해 실험실을 개방했다. 배터리 실험실에선 도요타 캠리의 배터리와 국산 배터리의 수명을 비교하고 있었다. 내구성 실험실에는 차체에 진동을 줘 문제가 없는지 24시간 점검이 진행됐다. 현대·기아차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연료소비효율(연비)이 높고 배출가스가 적은 그린카 분야에 대한 투자는 확대하고 있다. 최근 하이브리드 연구동을 증축하고 40여 명의 연구 인력도 더 뽑고 있다. 최고위 경영층도 하이브리드 프로젝트라면 하나하나 직접 챙길 정도로 관심이 높다. 그린카는 현대·기아차의 핵심적인 미래 성장동력이기 때문이다.》

아반떼-포르테 하이브리드

올해 7,10월 세계 첫 양산

주요 부품 국산화에도 성공

배터리 모터성능 日과 대등

○ 양다리 걸치기 전략

따지고 보면 그린카 분야에서 현대·기아차는 후발주자가 아니다. 이미 1986년에 국내 최초 전기자동차 1호인 ‘KEV-1’을 선보였다. 1991년에는 쏘나타 전기자동차도 내놨다.

하지만 곧바로 사업을 접었다. 밤새도록 충전해도 갈 수 있는 거리가 100km도 되지 않았다. 최고 시속은 50∼60km에 불과했다. 배터리 크기는 트렁크 공간을 가득 채웠다. 도저히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구조였다.

반면 요즘 주력하고 있는 내연기관 엔진과 배터리 및 전기모터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존 가솔린 차량보다 연비가 30∼50% 좋고 가격은 20∼40% 더 높은 데 불과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찾을 만하다.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전기차와 연료전지차가 있다. 석유가 완전히 고갈되면 2종류의 차량으로 100% 대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어느 차량이 주도권을 잡을지는 불명확하다.

이 상무는 “완벽한 하이브리드 기술력을 갖추면 전기차 혹은 연료전지차로 옮겨 타기는 비교적 쉽다”며 “포스트오일 시대 어떤 차량이 주도권을 잡을지 봐가면서 우선 하이브리드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부품 국산화의 ‘도박’

현대·기아차는 2005년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과 관련해 중대 결정을 하게 된다. 바로 ‘부품 국산화’다. 하지만 사내(社內) 반발이 무척 컸다.

“하이브리드 차량 부품도 모두 우리가 개발해야 합니다. 부품을 일본에서 사 오면 항상 우리는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에 불과합니다.”(이기상 상무)

“연구개발(R&D) 비용만 천문학적으로 나가는 거 아닌가요. 게다가 부품 국산화를 할 수는 있나요?”(최고위 경영진)

“할 수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이 상무)

이 상무는 당시를 떠올리며 “사실 속으로 겁이 났다”고 말했다. 부품 국산화에 실패하거나 일본 제품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면 퇴사를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회사는 부품 국산화를 택했다.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당장 현대·기아차는 하이브리드 차량 부품 개발에 들어갔다. 배터리 분야는 LG화학과 손을 잡았다.

이 상무는 갑자기 기자를 실험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부품 전시 공간으로 데려갔다. 일본 히타치(日立) 전기모터의 최대 용량이 12kW, 현대·기아차가 개발한 국산이 15kW였다. 크기는 국산이 더 작았다.

배터리도 상황이 비슷했다. 일본 파나소닉 제품(144V)보다 LG화학 제품(180V)이 성능과 크기 면에서 더 우수했다.

이 상무는 “앞으로 현대·기아차가 만드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주요 부품은 100% 자체 개발한 국산 제품으로 만든다”며 “부품, 설계, 완성차 3개 분야에서 국산화를 한 곳은 일본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라고 말했다.

○ LPI 하이브리드로 日아성에 도전

현대·기아차는 올해 7월 액화석유가스(LPG)엔진이 들아가는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차를, 10월에는 포르테 LPI 하이브리드차를 각각 선보일 예정이다.

LPG엔진을 사용하는 하이브리드차는 세계에서 처음이다. 가솔린 차량 기준으로 환산한 연비는 L당 21.3km에 달한다. 종전 내연기관 모델보다 53% 정도 연비를 향상시킨 것이다.

LPG 하이브리드 차량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연료 탱크와 펌프 장치 가격이 비싸 가솔린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제조원가가 100만 원 정도 더 높다”며 각종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결국 LPG 모델을 선택했다.

이 상무는 “가솔린 하이브리드 차량은 이미 일본이 세계 시장을 평정했다”며 “틈새시장인 LPG 하이브리드를 만들면 국내 시장을 방어할 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LPG 하이브리드 분야에서 한국이 1위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는 하이브리드 양산차를 내년 3만 대, 2018년에 50만 대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내년에만 2200여 명의 고용 효과와 4200억 원의 생산 유발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고성능 부품 국산화, 中企도 힘 보탰다▼

뉴인텍 3년 연구 결실

중소기업인 뉴인텍은 에어컨이나 세탁기 모터에 들어가는 ‘커패시터’를 만드는 회사다. 커패시터는 2차 전지의 일종으로 충전과 함께 전자 제품의 전류 질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 회사는 2005년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를 찾아가 “하이브리드 차량용 커패시터를 납품하겠다”며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하이브리드 차량용 커패시티는 일반 제품보다 높은 전압과 전류를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한다.

당시 현대·기아차는 국내 중소기업의 능력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부품 국산화를 이룬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일단 뉴인텍을 파트너로 선정했다.

뉴인텍은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만든 하이브리드 차량용 커패시티를 철저히 분석했다. ‘과거 제품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한번 해볼 만하다’고 결론 내렸다. 30년 이상 커패시티를 개발한 역량을 스스로 믿었다.

이후 약 3년 동안 하이브리드용 커패시티 개발에 전념했다. 테스트에 실패하고는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지난해 현대·기아차로부터 ‘납품 가능’ 통보를 최종적으로 받았다. 올해 7월에 나오는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 차부터 뉴인텍의 커패시티가 사용된다.

아쉽게도 뉴인텍은 흔치 않은 성공 사례다. 현대·기아차는 제품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이를 생산해줄 부품회사를 찾지 못해 발을 구르는 실정이다. 부품회사로서는 겨우 수백 대 수준의 하이브리드 부품 수요만 보고 제품 생산에 뛰어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수 뉴인텍 사장은 “갈수록 그린카 생산이 확대되면서 관련 부품 수요도 많아질 것이라고 믿고 투자했다”며 “올해부터 현대모비스와 함께 내부 자재도 국산화하는 작업에 들어가 2년 안에 100% 국산 하이브리드 차량용 커패시터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