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찾던 돈, 다시 위험자산 낚시질

  • 입력 2009년 3월 20일 03시 00분


글로벌 지표 호전에 주식-원자재 등 고수익처로 돈 몰려

증시 변동성 여전… 본격 회복신호로 보긴 일러

국내외 투자자들이 극도로 꺼리던 주식 펀드 회사채 원자재 등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를 최근 들어 조심스럽게 재개하고 있다.

전통적인 안전 자산인 달러화와 금의 가치는 다시 내려가는 반면 경기 회복의 지표로 통하는 원자재 가격은 상승 중이다.

이런 흐름은 최근 일부 경제지표가 호전되면서 각국이 풀어놓은 유동성 자금이 서서히 수익성이 있는 자산으로 움직이는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기 회복의 본격적인 신호라기보다는 글로벌 유동성 장세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달러 가치의 붕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실물자산으로 돈이 옮겨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 금값 떨어지고 구리-원유가는 상승 중

지난달 25일 연 12.54%까지 올랐던 국내 3년 만기 비우량(BBB―) 회사채 금리는 19일 11.93%까지 떨어졌다. 투기성 채권으로 분류되는 이 등급의 금리가 떨어진 것은 그만큼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호전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움직임은 증시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금융위기 때 변동성이 워낙 커 ‘위험 주식군’에 속했던 금융 및 건설주들이 최근 일제히 급등했다.

올 1, 2월 2조 원 이상 감소한 국내외 주식형펀드 설정액도 이달 들어서는 7780억 원 증가세로 돌아섰다. 국제유가가 반등할 조짐을 보이자 삼성투신운용의 고위험 상품인 원유파생상품펀드에는 한 달도 되지 않아 42억 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도 변동성이 큰 원자재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등 투자 패턴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경기 회복의 기대감을 상징하는 구리 가격이 한 달 전에 비해 19.31% 상승해 t당 3800달러까지 올랐다. 19개 주요 원자재 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로이터·제프리 CRB지수’도 상승 중이다.

반면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금값은 2월 중순에 역사적 고점인 온스당 1000달러를 기록한 뒤 최근 900달러 중반 선까지 떨어졌다.

미래에셋증권은 “글로벌 자금이 이머징 마켓 펀드 및 원자재, 정보기술(IT) 등 경기민감 섹터의 펀드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 각국 경기 부양책으로 글로벌 시장 유동성 넘쳐

이런 흐름은 시중에 많은 돈이 풀린 가운데 일부 경제지표 등이 호전되자 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각국 정부의 경기부양 조치와 금리 인하 등으로 지금 글로벌 자금시장에는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우려되자 웅크리고 있던 투자자들이 자연스럽게 고수익 투자처를 물색하게 된 것이다. 특히 18일(현지 시간) 미국 중앙은행이 국채를 직접 매입해 달러를 더 풀기로 결정하면서 앞으로 이 같은 현상이 더 가속화될 것이란 기대감을 키웠다.

미국 씨티그룹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올해 초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고 발표해 시장에 온기를 보탰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동유럽 국가의 신용부도스와프(CDS) 수치가 최근 크게 낮아진 것도 투자심리 개선을 나타내는 증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다소 높아지는 것을 경기 회복의 신호로 읽기에는 이르다고 보고 있다.

대신증권 성진경 시장전략팀장은 “수요 증가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야 경기 회복의 신호로 볼 수 있다”며 “최근 원유와 구리 가격 등의 상승은 과대 낙폭에 따른 반등과 석유 감산 발표 등 공급이 줄어드는 데 따른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 일부 호재에 대한 단기 반응일 수도

아무리 투자심리가 호전됐다 해도 투자자들이 예전처럼 위험자산에 왕성한 투자를 할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데다 그동안 손실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시장에서 ‘슈퍼 인플레이션’ 및 유가 재급등에 대한 경고가 쏟아지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각국 정부의 노력으로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넘쳐나면 물가가 뛰어오르고 원자재 등 변동성이 높은 실물자산으로 돈이 쏠리게 된다는 것이다.

삼성투신운용 양정원 주식운용본부장은 “최근의 위험자산 선호는 일부 호재성 뉴스에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며 “경기 회복의 뚜렷한 추세가 나타나지 않은 채 거대한 글로벌 유동성이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을 왔다 갔다 하는 변동성이 큰 상황이 지루하게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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