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Driven’]벤츠 CLS 63AMG

  • 입력 2009년 3월 19일 02시 53분


우르릉∼ 굶주린 야수처럼, 아드레날린을 뿜는다

6209cc V8 ‘거함엔진’ 거침없이 질주

시간마저도 천천히 움직이는 듯 나른하고 약속도 없는 무료한 일요일 오전. TV에서 나오는 방송이 아니라 멍하니 TV 그 자체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퍼뜩 정신이 든다.

‘이대로 전쟁과 같은 월요일을 맞을 수는 없다.’

세 꼭지 별로 반짝이는 로고가 들어간 메르세데스벤츠의 키를 집어 들고 무작정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가 시동을 건다. ‘부르릉∼’ 오늘 따라 시동 소리가 10년 전 유행가처럼 지루하다.

가속페달을 밟아 속도를 올려봤지만 여전히 흥이 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 가속은 밋밋하고 운전대는 헐렁거리는지. 차의 움직임은 한 사이즈 큰 옷을 입은 듯하다. 게다가 같은 색깔, 같은 배기량의 동일 모델까지 옆을 스쳐 지나간다. 나름 큰마음을 먹고 백화점에서 개성 넘치는 옷을 사 입고 나오는 길에 똑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버린 느낌이다. 상큼한 드라이브로 활력을 얻어보려 했건만 오히려 기분은 더욱 가라앉는다.


▲동아일보 석동빈 기자

일반 벤츠로도 만족할 수 없는 고객들, 자동차로 아드레날린을 얻고 싶은 고객들을 위해 벤츠가 내놓은 처방전이 ‘AMG’다. 물론 이 처방전을 받으려면 거액이 필요하다.

○벤츠 중의 벤츠

10여 종류에 이르는 AMG 모델 중 ‘CLS 63AMG’를 타봤다.

‘우르릉∼’ 시동 소리부터 굶주린 야수 같다. 정신이 번쩍 든다.

4개의 배기구에서 터져 나오는 배기음은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2대가 동시에 뿜어내는 소리와 흡사하다. 자동차를 이동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옆집 아저씨는 “벤츠 엔진 소리가 왜 이래. 벤츠도 별수 없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머플러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지만 그게 AMG의 가장 큰 특징이다. 6209cc의 V8 대배기량 엔진과 난로의 연통 굵기만 한 4개의 배기구가 만들어내는 ‘음악’이다. 실린더 1개의 배기량이 대우자동차 마티즈의 배기량과 맞먹으니 소리가 우렁찰 수밖에.

운전석에 앉았다. 우선 의자 아래에 붙은 스위치로 스포츠 시트의 폭을 몸에 딱 맞게 조인 뒤 부드럽게 도로 위에 차를 올렸다. 가속페달의 초반 3분의 1은 일반 벤츠처럼 반응이 느긋하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오산이다. 깊게 밟으면 갑자기 맹수로 변한다.

정밀 측정기로 재어본 시속 0→100km 가속시간은 4.7초(제원은 4.5초). 3명이 탑승한 상태에서 아무런 연습 없이 측정한 기록으로는 대단히 훌륭하다. 여러 모델에서 경험한 514마력 63AMG 엔진은 탑승 인원과 상관없이 제원에 근접한 기록을 내는 ‘괴물’이다.

가속페달을 계속 밟고 있으면 출발 15초 만에 시속 200km를 돌파하고 곧 시속 250km 속도제한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허무할 정도로 빠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4도어 세단이다.


▲동아일보 석동빈 기자

브레이크 성능 역시 강력하다. 보통의 벤츠와는 다르게 살짝만 밟아도 강한 제동이 걸리도록 세팅이 돼 있으며 시속 250km에서 급제동으로 정지해도 끝까지 밀리는 느낌 없이 제 역할을 다한다.

물론 파워풀한 주행에 따른 대가도 따른다. 공인 연료소비효율이 L당 6.1km에 불과하며 제법 달렸다 싶으면 연비는 3km대로 떨어진다.

○느긋한 벤츠의 핸들링은 잊어라

AMG는 고속도로에서만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낮게 깔린 차체와 강하게 조여진 서스펜션은 강한 출력과 잘 조율돼 있어 스포츠카 부럽지 않은 핸들링을 보인다.

에어매틱 서스펜션의 강도를 가장 높이고 굽이진 길을 빠르게 돌아나가다 보면 강인한 차체가 빚어내는 믿음직한 핸들링을 맛볼 수 있다. 날카롭게 베어내는 듯한 손맛은 경쟁모델인 BMW M5에 비해 약간 떨어지지만 우직한 느낌으로 노면을 움켜쥐고 운전자의 요구를 묵묵히 수행해내는 신뢰감은 높다.

폭발적인 출력 때문에 커브길에서 안전장치를 끄고 조금만 강하게 가속페달을 밟으면 여지없이 엉덩이가 흔들리며 ‘드리프트’ 모드로 전환되지만 차체는 급작스러운 반응을 보이지 않아 안정적인 컨트롤이 가능하다. 신경질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스포츠성을 높인 AMG 모델이지만 기본적인 벤츠의 자동차 제조철학을 따르고 있다.

다만 안정감을 높이다 보니 운전자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하는 역동적인 느낌은 다소 떨어진다. 분명히 빠른데도 체감적으로는 그만큼 와 닿지 않고, 핸들링과 코너링도 뛰어나지만 피가 옆으로 쏠리는 듯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7단 자동변속기는 비교적 적절한 변속타이밍과 동력전달력을 보여주지만 약간 더 타이트했다면 좋았을 듯하다.

○벤츠에 야수 본능을 불어넣은 AMG

다임러벤츠의 연구소 출신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흐트(Hans Werner Aufrecht)는 동업자 에르하르트 멜허(Erhard Melcher)와 함께 그로사스바흐(Grosabach)에서 두 창업자의 성(姓)과 지명의 머리글자를 따서 ‘AMG’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AMG는 벤츠 엔진을 튜닝해서 만든 레이싱카로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명성을 높여갔다. 1993년에는 벤츠와 공동으로 레이싱카를 개발해 우승을 거두게 되면서 본격적인 협력이 시작됐다. 1999년 1월에는 벤츠가 AMG를 사들여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벤츠의 고성능 차량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동아일보 석동빈 기자

AMG는 엔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엔지니어 1명이 엔진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립한 뒤 자신의 이름을 엔진에 새겨 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V8 6.2L와 V12 6.0L 엔진을 주로 생산하고 있으며 벤츠의 모든 라인업에 AMG 모델을 내놓고 있다. 이 밖에도 차의 외관을 스타일리시하게 바꿔주는 에어로다이내믹 파츠와 휠 등도 개발하고 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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