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中企공정거래협약 1년반 성적은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동아일보, 협약업체 50곳 조사

《공정거래협약은 대기업과 중소 하청업체의 상생(相生) 협력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2007년 9월 도입한 제도다. 이후 1년 반 동안 대기업 79곳과 중소 협력회사 3만1561곳이 체결할 정도로 이 협약은 빠르게 확산됐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가는 요즘 공정거래협약은 경영환경 악화로 고전하는 중소기업들에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자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례1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온라인 게임개발업체 디지탈릭은 올해 2월 대만에 ‘느와르’라는 게임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직원 50여 명의 작은 업체가 개가를 올린 데는 지난해 9월 공정거래협약을 맺은 SK텔레콤의 적극적 지원이 큰 몫을 했다.

디지탈릭의 김동성 사장은 “공정거래협약을 맺은 SK텔레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했기 때문에 수출이 가능했다”며 “SK텔레콤이 우리 회사의 아이디어, 미래 가치를 보고 계약금 전액을 일시불로 지급해 준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사례2

액정표시장치(LCD)의 광원(光源) 역할을 하는 백라이트 유닛 생산업체 디에스엘시디는 1999년부터 삼성전자와 협력관계를 맺어 왔다. 지난해 7월 삼성전자와 공정거래협약을 맺은 뒤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고 생산설비 개선자금으로 42억 원을 무이자로 빌릴 수 있었다.

오인환 디에스엘시디 사장은 “삼성전자가 설비자금과 인력, 기술 지원을 해준 덕에 생산성이 20∼30% 높아졌다”며 “물류 개선으로 2차 협력업체까지 도움을 받아 ‘윈윈’이 아니라 ‘윈윈윈’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협력사 72% “대기업 도움 받았다”

교육-기술 지원받아… 만족도는 ‘보통’

“정부가 협약이행 더 꼼꼼히 평가해야”

○ 부품의 질 높아져 윈-윈

동아일보가 대기업과 공정거래협약을 맺은 중소 협력업체 50곳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를 한 결과 72%인 36곳이 ‘어떤 형태로든 대기업의 도움을 받았거나 받을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업체는 28%인 14곳이었다.

대기업에서 받은 지원의 형태로는 ‘인력 교육 및 훈련 지원’을 꼽은 업체가 19곳(복수응답 가능)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술개발 지원 및 보호’(15곳), ‘하도급 대금 지급조건 개선’(14곳), ‘운영자금 지원’(6곳) 등의 순이었다.

KT에 이동통신 중계기를 납품하는 에프알텍의 이병철 이사는 “협약 이후 KT는 협력회사 직원을 대상으로 품질경영교육을 실시했다”며 “대기업은 부품의 질을 높이고,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기술 수준을 높일 수 있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협약에 대한 협력업체들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평균 3.5점으로 보통 수준(3점)을 웃돌았다.

특히 ‘협력업체 선정의 투명성 제고’와 ‘대기업의 자율적인 불공정행위 예방’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많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상생 협력 분위기를 만든다는 공정위의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셈이다.

○ “실질 효과 내려면 상벌 수준 높여야”

공정위는 협약이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체결 당시 ‘납품일로부터 15일 안에 대금을 주겠다’는 등의 구체적 실천 목표를 대기업이 작성케 해 언론을 통해 공표하고, 1년 단위로 이행 여부를 확인해 그 결과를 A+(최우수), A(우수), B(양호), C(미흡)로 나눠 공개하고 있다.

2007년 9월 공정거래협약을 맺은 KT와 삼성전자, LG전자는 최근 평가에서 모두 A등급을 받아 1년간 공정위의 조사를 면제받았다.

하지만 협약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보완해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협력업체 중 56%(28곳)는 ‘정부가 협약 체결의 결과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상벌(賞罰)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갑(甲)과 을(乙)이 분명한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관계 때문에 협약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도 불만을 드러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납품 단가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한 협력업체 사장은 “작년 12월에 협약을 맺은 대기업의 입찰에 참가했더니 급등한 원료비는 고려하지 않고 낙찰가를 1년 전보다 30%나 낮췄더라”며 “어려움을 겪는 협력업체에 가장 필요한 지원은 적절한 납품 단가를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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