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왜 빌려?” 외환보유액만 축내는 은행들

  • 입력 2009년 3월 4일 02시 54분


당국 푼 달러로 외채갚기 열중… 외화차입 외면

2월 보유액 2015억 달러… 마지노선 겨우 방어

2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석 달 만에 다시 감소했다. 하지만 외환당국이 시장 개입을 거의 하지 않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2000억 달러 선은 지켜냈다.

이런 가운데 시중은행들이 외환보유액의 지원만 바라고 해외에서 달러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한은 지난달 시장개입 거의 안해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2015억4000만 달러로 1월 말(2017억4000만 달러)보다 2억 달러 줄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0월 사상 최대 폭인 274억2000만 달러 급감했고 11월에도 117억4000만 달러가 줄면서 2005억1000만 달러로 떨어졌다. 하지만 12월과 1월 두 달 연속 소폭 증가하면서 2000억 달러 이상을 유지했다.

하근철 한은 국제기획팀 차장은 “은행들이 한은으로부터 공급받은 외화자금 중 일부를 상환하면서 외환보유액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이 감소한 것은 지난달 유로화 및 일본 엔화의 약세로 한은이 보유한 이들 지역의 통화 표시자산을 달러로 환산한 액수가 줄었고 정부가 수출입 금융지원을 위해 달러를 풀었기 때문이다.

또한 외환보유액의 변동이 미미한 것은 정부와 한은이 2월에 외환시장 개입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 은행들 달러 확보 자구노력 미흡

최근 외화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이 적극적인 외화차입 노력 없이 조달이 손쉬운 외환보유액에만 의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정부와 한은이 시중에 공급한 외화는 2월 말 현재 512억 달러(한미 통화스와프 자금 204억 달러, 외환보유액 308억 달러)에 이른다.

반면 이 기간에 국내 은행들이 외국에서 차입한 자금은 2월 13일 기준 182억2000만 달러(단기 133억7000만 달러, 장기 48억5000만 달러)로 정부와 한은이 공급한 달러의 36%에 불과하다.

오히려 은행들은 지난해 10월부터 넉 달 연속 외채를 순상환하고 있다. 신규 차입이 어려운 가운데 단기 외채를 순상환하는 것은 외환당국이 푼 달러를 대부분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을 갚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제공하기로 한 외채 지급보증 제도를 이용해 해외에서 달러를 들여온 은행이 지금까지 한 곳도 없다는 것도 은행들이 외화차입에 소극적이라고 지적받는 이유다.

외환 당국 관계자는 “올 1월에 신용경색이 다소 풀렸을 때도 시중은행들은 앞으로 시장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을 기대하면서 적극적으로 차입에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중은행의 외환 담당자들은 “여전히 한국뿐 아니라 유수의 글로벌 금융회사들도 장기 달러 차입은 못하고 있다”며 “지급보증을 받는다 해도 장기 고금리로 빌려와야 하는데 이는 오히려 국가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