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기업’ 91개사

  • 입력 2009년 2월 13일 03시 03분


통신-제약 같은 내수업종등 작년 4분기 매출-영업익-순익 증가

국내 기업들의 채산성은 지난해 3분기(7∼9월)부터 점차 꺾이기 시작해 4분기(10∼12월) 들어 본격적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졌고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전에 없던 경제위기가 찾아온 작년 4분기에 이전보다 더 좋은 실적을 올린 ‘맷집 좋은 기업’들이 있다.

12일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날까지 지난해 실적이 나온 511개 상장사 중 4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모두 증가한 기업은 91개다. 혹독한 위기를 거치면서도 장사도 잘하고, 투자도 선방한 것이다.

이들은 경기방어업종의 대표 기업, 시장지배력이 높은 기업, 원자재 가격 및 원화가치 급락 수혜 기업, 안정적인 매출처가 있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 내수 위주, 시장지배력 큰 기업 선방

통신기업과 제약기업은 대표적인 경기방어업종 기업으로 지난해 말 실적도 눈에 띄게 좋았다. SK텔레콤, KTF는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각각 51%, 80% 늘었고 유한양행 녹십자 한미약품 등 제약기업들도 약진했다. 필수소비재 기업인 KT&G는 여세를 몰아 올해 ‘영업이익 1조 원’ 선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내수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탄탄한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는 기업들도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포스코(59.7%) 신세계(12.4%) NHN(5.9%) 등은 영업이익률이 늘어난 대표적인 사례다.

대우증권 홍성국 리서치센터장은 “망해도 3년 이상 가는 부자 기업들이 역시나 위기 국면에서 잘 버텼다”며 “특정 업종의 기업 환경과 관계없이 역량과 입지에 따른 실적 차별화가 다른 분기보다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국제원자재 가격 급락에 따른 원가절감 효과가 실적에 반영된 기업도 있다. 매출 규모보다도 마진 폭이 커지는 경우다. 삼성정밀화학은 매출액은 전년 대비 32% 증가에 그쳤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무려 416%, 202% 늘었다.

○ 엔화 강세로 호텔업도 특수

장사를 잘한 기업에는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대형 조선사도 다수 포함돼 있다. 비록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대표기업들이지만 지난해 말이 조선업 호황의 ‘끝물’이었다는 점에서 올해 실적은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았다. 대신증권 성진경 시장전략팀장은 “조선사들의 4분기 실적은 지금까지 수주한 일감으로 수익이 발생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포스렉과 글로비스는 각각 포스코와 현대차라는 모기업이 든든히 버티고 있어서 경기침체에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이처럼 안정적인 매출처가 뒷받침되는 기업들은 경기가 나빠도 실적 영향을 덜 받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영업이익이 각각 76%, 154% 오른 태웅과 소디프신소재는 한국과 미국 정부의 차세대 에너지 육성 정책에 따른 수혜를 본 것으로 분석된다. 호텔신라는 엔화 강세로 일본인들의 관광 수요가 한국으로 몰리면서 영업이익이 269% 늘었다.

그러나 이들 기업 명단에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표기업이 상당수 포함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가격의 끝없는 추락으로 분기 단위로 처음 적자를 냈으며, 현대차도 소비침체로 순익이 감소했다. SK에너지는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이 늘었지만 환차손을 크게 입어 4분기 당기순손실을 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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