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계제도 변경, 증시 ‘구원투수’ 될까

  • 입력 2009년 1월 24일 03시 00분


■정부,국제 회계기준 조기 도입 확정

《기업 회계제도의 변경이 침체 상태에 빠진 국내 증시의 ‘구원투수’가 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정부가 국제회계기준(IFRS)의 일부 내용을 조기 도입하기로 확정하면서 기업의 자산 재평가가 증시를 부양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IFRS는 유럽에서 만든 회계기준으로 기업의 유무형 자산을 시장 가치로 평가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변경된 회계기준이 적용되면 기업의 ‘장부가치’만 좋아져 기업들의 ‘실체’를 감추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유무형자산 시장가치로 재평가… 순자산 증가효과

IMF 때도 적용 증시부양… “실적 부풀려 혼선” 우려도

○회계기준 변경하면 ‘PBR’ 하락

한국회계기준원은 2011년 도입 예정인 IFRS의 일부 항목을 조기에 적용하는 ‘외화환산관련 회계처리기준 개정’을 14일 확정해 발표했다. 정부는 당초 이 제도를 올해부터 시범 적용해 2011년 전면 도입할 예정이었다.

이번에 조기 도입되는 항목은 크게 자산재평가와 기능통화제도로 나뉜다.

이 중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산재평가다. 국내 기업이 이를 받아들이면 과거에 사들인 유무형의 자산을 현재 시가로 다시 기입할 수 있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매입 당시보다는 크게 오른 경우가 많아 기업의 순자산은 늘어나게 된다.

순자산 증가는 주가를 평가하는 중요 잣대인 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낮춘다. PBR는 기업의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값. 기업의 PBR가 낮을수록 증시에서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자산 재평가로 보유 부동산 가격을 높게 기입하면 PBR의 분모가 커지면서 PBR가 낮아진다. 증시에는 호재인 셈이다.

기능통화제도는 연중에는 달러 등의 외화로 장부에 기입하고 결산일에만 원화로 환산하는 제도다. 현재는 회기 중에도 모두 원화로 환산한 가격을 기입해 환율 변동에 따라 장부상 환차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환율 급등(원화가치 하락)으로 환차손을 본 해운 항공 조선업종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면 평가손실액이 크게 줄어든다.

우리투자증권 한슬기 연구원은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조기 도입한 IFRS 덕분에 기업들의 장부상 재무구조는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별다른 호재가 없는 증시에서 이번 제도 변경은 증시 상승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때 증시부양 효과

정부가 회계제도 변경을 서둘러 추진한 것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말 일시적으로 자산 재평가를 허용해 증시를 부양한 경험에 따른 것이다.

우리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1998∼2000년에 자산 재평가를 한 국내 기업 중 평가차액이 큰 5개 기업(한국전력 대한항공 SK 현대차 대림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417.5%에서 178.8%로 낮아졌다.

특히 삼부토건은 1999년 4월 재평가 결과로 순자산이 196억 원에서 1550억 원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공시하면서 주가가 한 달여 사이에 8000원대에서 1만4000원대로 폭등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 현재 IFRS 기준으로 12월 결산법인 264개사의 보유 토지를 재평가하면 토지가격은 65.2%(57조9978억 원) 늘어난다”며 “토지의 재평가 차액만 최대 22조 원이 넘게 돼 기업의 성적표는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 옥석 가리기에 부담될 수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회계기준의 조기 도입이 기업의 실적을 부풀려 일반 투자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회계제도의 변화 등을 꼼꼼히 확인하기 힘든 일반투자자들은 기업의 실제 성적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특히 2011년 전면 시행 전까지는 희망하는 기업만 선택적으로 도입하도록 해 업종 간 비교도 힘들다.

자산 재평가를 한 기업으로서도 실적 개선 없이 자산이 부풀려졌는데도 구조조정을 게을리 하려는 유혹에 빠지거나 일부 투자자의 배당 요구에 시달려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주기적으로 재평가를 하면 부동산 가격 하락 때는 영업이익과 상관없이 기업의 실적이 악화될 수도 있다.

인천대 홍기용(회계학) 교수는 “기업의 자산이나 실적이 부풀려지게 되면 부실기업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며 “국제회계기준 일부 항목의 조기 도입은 국내 회계제도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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