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 증식’ 출자-손자회사 첫 수술

  • 입력 2009년 1월 16일 02시 58분


공공기관이 보유한 111개 회사의 지분 약 3조436억 원어치가 민간에 매각되고 19개 회사가 청산 또는 폐지된다. 배국환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15일 “남은 143개 출자기관도 투자성과를 높여 조기 매각을 유도하는 등 관리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공공기관이 보유한 111개 회사의 지분 약 3조436억 원어치가 민간에 매각되고 19개 회사가 청산 또는 폐지된다. 배국환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15일 “남은 143개 출자기관도 투자성과를 높여 조기 매각을 유도하는 등 관리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방만경영 실태 및 개혁방안

실태-산단공단, 업무 무관한 부두 하역사업 진출

LG파워콤 1급이상 21명중 9명이 한전 출신

방안-목표달성 회사 청산… 신규출자 최대한 억제

유지되는 143곳은 경영평가-공시 대폭 강화

정부가 15일 ‘제5차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계획’을 통해 공공기관 출자회사에 대한 대대적인 매각과 청산, 통폐합 방침을 밝힌 것은 출자회사가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공공기관 출자회사들이 ‘관리 사각(死角)지대’에 놓여 경영 부실과 기능 중복에 따른 폐해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반영됐다.

배국환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앞으로는 불요불급한 출자회사가 남발되지 않도록 신설을 억제하고 공시제도를 강화하는 등 출자회사에 대한 관리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여러 차례 공공기관 개혁을 시도했지만 이번처럼 공공기관 출자회사와 손자(孫子)회사까지 개혁의 범위를 확대한 것은 처음이다.

○ 공공기관의 ‘방만경영’ 수단 된 출자회사들

그동안 경제계에서는 공공기관이 핵심 업무와 무관한 사업에 무분별하게 진출해 민간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재정부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여수페트로라는 회사에 출자해 부두 하역사업에 진출하고, 한국가스기술공사가 집단에너지사업에 나선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파악하고 있다.

출자회사 임원 자리가 공공기관 퇴직직원의 ‘낙하산 인사’에 활용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한국철도공사는 퇴직자 28명을 산하 19개 민자(民資)역사의 임원으로 보냈다. 또 한국전력의 출자회사인 LG파워콤의 1급 이상 고위직 간부 21명 가운데 9명은 한전 출신이다.

사업관리가 제대로 안돼 공공기관의 투자금액이 낭비된 사례도 발견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인천공항에너지에 180억 원(지분 34%)을 출자했지만 인천공항에너지는 현재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재정부 당국자는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는 요건이 엄격해 기타 공공기관의 자회사,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재출자 회사에 대해서는 사실상의 관리공백 상태가 발생했다”며 “경영평가 지표도 공공기관에 따라 임의로 이뤄진 게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 설립목적 달성한 출자회사는 청산

정부는 우선 111개 공공기관 출자회사에 대한 보유지분을 단계적으로 팔기로 했다.

여기에는 예금보험공사가 1조3615억 원을 출자해 지분 49%를 보유한 대한생명, 6439억 원을 들여 0.74%를 가진 신한금융지주 등이 포함된다. 한국산업은행이 2132억 원을 투자해 27.9%를 보유한 GM대우차도 올해부터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다. KOTRA가 지분 26%를 소유한 부산의 벡스코도 매각 대상에 포함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스카이72 골프장은 올해 상반기 중, 한국광해관리공단과 강원랜드가 함께 지분을 소유한 문경레저타운 및 블랙밸리 골프장은 올해부터 매각이 시작된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출자한 SBS스포츠채널, 국제방송교류재단이 투자한 YTN라디오, 도로교통공단이 출자한 YTNDMB 등 미디어회사도 지분 매각 대상에 포함됐다.

이와 함께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회사와 산업기술인터넷방송국, 중앙FMC 등 17개 회사는 이미 설립 목적을 달성했거나 경영 부실이 누적됐기 때문에 청산 또는 폐지된다.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된 143개 회사에 대해서는 관리를 강화하고 상황에 따라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 출연연구소의 연구소기업 등 6개 회사는 원칙적으로 투자일로부터 5년 안에 지분을 팔거나 투자금을 회수하도록 했다. 민자역사 및 역세권 개발 관련 20개 회사 등도 사업을 마친 뒤 단계적으로 팔기로 했다.

○ ‘멋대로 출자회사 신설’ 막는다

정부는 무분별하게 출자회사를 신설하거나 출자금을 증액하는 공공기관들의 행태에 쐐기를 박기 위해 이를 엄격히 통제하는 방안을 함께 내놓았다.

특히 출자회사를 새로 만들 때 정부와 협의하도록 한 대상을 확대하고, 신설이 가능한 사례를 정해 그 외에는 새로 만들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올해부터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지표에 ‘출자회사 등 관리’와 관련된 사항을 공통 평가내용으로 포함시켜 출자회사에 대한 투자성과도 반영할 계획이다. 경영공시 대상이 되는 출자회사의 범위도 지분 1% 이상을 보유한 기관으로 명확히 하기로 했다.

이번 5차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계획이 완료되면 현행 273개에 이르는 공공기관 출자회사(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회사는 제외)는 143개로 절반 정도 줄어든다. 출자액도 5조8380억 원에서 2조7183억 원으로 낮아진다.

하지만 정부 계획대로 매각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가 기존에 발표한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반도체, 쌍용건설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의 매각을 추진 중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 악화로 매각 협상이 결렬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증시 상황이 좋지 못한 것도 매각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증시가 위축된 상황에서 공공부문이 한꺼번에 ‘공공기관 출자기업 매물’을 쏟아내면 시장이 소화하기 어려워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고, 제값을 받지 못하면 ‘헐값매각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지분비율 바뀌어도 고용엔 별 영향없을 듯”▼

민간업체가 대부분 과반수 지분

정부가 15일 공공기관 출자회사를 정리하는 방안을 내놓음에 따라 매각 및 청산, 통폐합 대상이 되는 회사 임직원들의 고용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매각 대상 기업 중 대부분은 민간 업체들이 과반수의 지분을 보유하고 경영권을 행사해온 만큼 이번 지분 매각이 고용에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지분 비율이 바뀌면 임원들은 다소 영향이 있을 수 있겠지만, 회사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일반 직원의 고용 상황은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 청산, 통폐합 대상 130개 회사에는 총 3만7272명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모(母)기업에 통합되는 2개 회사를 제외하고 매각, 청산되는 128개 회사 가운데 공공기관이 50%를 넘는 지분을 보유한 곳은 산업기술인터넷방송국 등 5개에 불과하다. 이들 기관에 근무하는 임직원은 80명.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공기관의 지분이 매각되면 정부의 입김이 사라져 완전한 민간 기업으로 바뀐다는 게 변수다.

새 경영진이 인력 구조조정을 하거나, 조직운영 방식 등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어 해당 기관 임직원들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재정부 당국자는 “고용승계 문제는 지분 매수 희망자와 매각 협상을 벌일 때 각 공공기관이 개별적으로 논의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지분을 인수하는 쪽의 의향에 따라 고용 환경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청산되는 17개 기관 임직원은 167명. 이들 기관은 대부분 설립 때부터 특별한 목적을 갖고 한시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재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통폐합되는 2개 기관의 종사자 499명은 신변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능이 중복된다’는 이유로 모기업에 흡수되는 탓에 업무 조정 등 추가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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