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중도금-잔금 연체자 크게 늘었다

  • 입력 2009년 1월 12일 23시 06분


회사원 구 모(40) 씨는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분양받은 159㎡(48평형) 아파트 중도금 때문에 얼마 전 은행을 찾았다가 대출이 안 돼 당황했다. 현재 사는 116㎡(35평형) 아파트를 담보로 추가 대출을 원했지만 은행 측은 "아파트 값이 1억 원 이상 떨어졌다"며 손사래를 쳤다. 구 씨는 "대출을 못 받으면 6차 중도금 6000만 원을 낼 방법이 없다"며 답답해 했다.

경기침체와 부동산 거래 실종 등으로 아파트 중도금이나 잔금을 연체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중도금이나 잔금 미납자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등 가계부실이 심화되고 건설사들은 자금사정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경기침체로 연체자 증가

12일 상위 10위권 대형 건설업체에 따르면 아파트 중도금과 잔금 연체율은 지난해 초 10%대에서 최근에는 30~40%대로 급증한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1월 입주한 인천 연수구 송도신도시의 A단지는 입주 초기 잔금 연체율이 10% 정도였지만 최근 입주한 B단지는 40%대로 치솟았다.

한모(51) 씨는 대구 수성구의 194㎡(58평형) 아파트의 입주지정기간을 수개월 넘긴 현재까지도 잔금을 못 내 속수무책이다. 분양가 7억 원 중 한 씨가 못 낸 잔금은 1억8000만 원. 한 씨는 "어떻게든 집을 팔아야 잔금을 낼 수 있는데 매수 문의조차 없다"며 "설상가상으로 집값도 떨어지고 있다"고 탄식했다.

2006년 대전 유성구에서 149㎡(45평형) 아파트를 계약한 김모(47) 씨는 주식과 펀드에 넣어둔 중도금 및 잔금용 2억 원이 현재 반토막 상태다. 지난해 펀드 열풍에 휩쓸려 욕심을 낸 게 화근이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115㎡(35평)를 분양받은 이모(43) 씨는 현재 사는 서초구 잠원동 아파트를 전세로 돌려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세금이 1년 사이에 최고 1억 원 가량 내린데다 전세를 싸게 내놔도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아 결국 입주를 포기했다.

새 아파트 입주가 지연되면서 '불 꺼진 아파트'도 늘고 있다. 지난달 17일 입주가 시작된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대규모 단지(총 2991채)는 입주율이 15%에 그쳤다.

●가계 부실과 건설사 유동성 위기 심화

중도금과 잔금 연체가 급증하면서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 중 하나인 가계부실과 건설사의 유동성 악화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충남 아산시에서 150㎡(45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은 회사원 정모(52) 씨는 잔금 8000만 원을 1년째 못 내 지난해 말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잔금을 못 내면 입주는 물론 주택 소유권을 얻을 수 없다"며 "연체이자는 순식간에 불어나기 때문에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시행사와 계약한 기간에 공사를 마쳐야 하는 건설업체는 당장 공사대금으로 쓸 중도금 등이 안 들어오면 돈을 빌려 공사를 해야 한다. 대형 건설사의 한 임원은 "연체율이 20%를 넘으면 금융비용이 치솟아 사실상 남는 게 없다"며 "일부 입주자는 건설사가 계약해지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일부러 연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선덕 한국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중도금이나 잔금 연체는 개인과 기업간 계약의 문제여서 정부가 나서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정부가 가계와 건설사 유동성 대책을 세울 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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