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잘못땐 인재 잃고 생산성 하락

  • 입력 2008년 12월 19일 03시 07분


■ 포브스, BoA 등 美 구조조정 문제점 지적

《무겁고 뒤숭숭한 분위기, 떠돌아다니는 각종 소문, 화장실이나 휴게실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 갑자기 늘어난 사내 메신저와 e메일, 동료 간의 눈치 보기….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치면서 많은 직장에서 이런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삼삼오오 모여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려는 직원이 많아지면서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생산성과 효율성 저하는 물론 팀워크와 사기도 크게 떨어진다.》

감원기간 길면 분위기 어수선-사기 저하

살아남은 소수 과중한 업무 떠맡기 십상

경제 전문 격주간지 포브스는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사례를 들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구조조정의 함정

BoA는 지난주 “향후 3년간 3만∼3만5000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메릴린치 인수합병에 따른 중복 인력을 정리하고 경기침체와 금융위기 여파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BoA는 설명했다.

그러나 BoA의 구조조정 방식에 대해 포브스가 우선 문제 삼은 것은 3년으로 잡은 구조조정 시한. 이는 일반적으로 몇 달, 혹은 길어도 1년 내에 마무리되는 구조조정에 비해 너무 길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내년 초까지 상황과 시스템을 점검한 뒤 그 결과에 맞춰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구조조정 기간이 길어질수록 회사 내부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퇴출 공포에 시달리는 직원뿐 아니라 감원의 칼자루를 쥔 임원 역시 감원 대상 리스트 작성에 매달리느라 업무에 소홀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경영협회(AMA)의 매니 애브라미디스 인사 담당 부사장은 “이는 회사가 3년 동안 직원들이 업무 외의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나아가 BoA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것도 문제를 악화시킬 소지가 있다고 포브스는 분석했다. 구조조정의 방향이나 기준에 대한 명확한 밑그림이 없을 경우 유능한 인재들이 먼저 회사를 등지고 나갈 수도 있다.

인재 컨설팅회사 머서의 짐 소이어스 대표는 “단순히 몸집을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미래 계획을 갖고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것을 회사가 확신시켜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최고경영자(CEO)는 끊임없이 이를 강조할 책임이 있다.

○ 살아남은 이들은?

구조조정의 여파를 피해 간 ‘생존자’를 다독이는 것도 회사의 중요한 과제다.

16일 미국의 인력개발회사 리더십IQ가 지난 6개월간 구조조정을 단행한 318개 회사 직원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4%가 “구조조정 전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회사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예전보다 떨어졌다”는 대답은 69%, “실수가 더 잦아졌다”는 대답도 77%나 됐다.

마크 머피 리더십IQ 회장은 “일자리를 유지한 사람들이 감읍해서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통념은 잘못된 환상”이라며 “실상은 정반대”라고 꼬집었다.

구조조정이 장기간 진행될 경우 살아남은 소수에게 가중되는 부담이 경시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처리해야 할 일이 조금씩 늘어나다 보니 추가 보상을 요구할 기회도 없이 과도한 업무를 떠맡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인재 컨설팅회사 얼라인HR의 수전 릴 컨설턴트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미래의 더 나은 대접을 보장할 때에만 구조조정은 성공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경기가 회복될 시점에 회사는 결국 이들 인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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