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사태 3개월…한국경제는 지금

  • 입력 2008년 12월 13일 02시 58분


자금줄 막히고… 소비 얼어붙고… 기업들 ‘추운 겨울’

《9월 15일(현지 시간) 미국의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과 함께 터져 나온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후 3개월간 세계 경제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사태의 여파로 한국도 원-달러 환율 폭등과 외환 부족 등의 충격에 시달려야 했다. 국제적 신용경색으로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내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국내외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의 노력으로 금융시장은 조금씩 안정세를 되찾고 있지만 금융위기는 실물 경제의 침체로 옮겨가면서 기업들에 ‘가혹한 구조조정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온 주요 산업들은 선진국 경제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부동산 시장은 향후 금융권의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



■금융시장

은행, 정부서 7조~8조 지원받아 급한불은 꺼

BIS비율 의식 대출 기피… 시중 돈가뭄 여전

“금융권의 ‘빈혈(유동성 부족)’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이제는 기업에 돈이 가지 않는 ‘동맥경화(신용경색)’가 문제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동걸 원장은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3개월이 지난 현재 한국 금융권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3개월간 기준금리를 2.25%포인트 내리는 등 시장에 유동성을 쏟아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의 자금 조달에는 숨통이 틔었다. 하지만 늘어난 유동성은 은행에 고여 있을 뿐 정작 돈이 필요한 기업이나 가계로는 원활히 흘러들지 않고 있다.

○ 은행권 돈 가뭄은 어느 정도 해소

“이제 은행에 돈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11일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인하된 뒤 한 시중은행 자금담당 부행장이 한 얘기다. 은행들이 은행채, 양도성예금증서(CD)가 팔리지 않아 자금 조달에 피가 마르던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것.

한은은 기준금리를 대폭 내렸을 뿐 아니라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이달 9일까지 12조8000억 원의 원화 유동성을 시중에 풀었다. 이 중 7조∼8조 원은 은행권 지원에 쓰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 한은은 15일 정부가 조성하는 채권시장안정펀드에 출자하는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2조5000억 원을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방식으로 추가 공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말 7.8% 수준까지 올라갔던 은행채 평균금리는 12일 현재 6.70%로 하락했다. 6월 말 6.18%까지 급등했던 CD금리 역시 4.75%로 떨어졌다.

○ 기업 대출은 여전히 한겨울

한 대형 건설업체는 9월경 연말에 만기가 돌아오는 수백억 원의 대출 중 일부만 상환하고 나머지는 연장하기로 은행과 합의했다. 그러나 은행은 이달 초 갑자기 “부실 우려가 커졌다. 전액 상환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업체의 자금담당자는 “우리가 이 정도면 다른 회사는 사정이 뻔하다. 은행권이 모두 이런 식이면 버틸 수 있는 기업은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한은이 최근 내놓은 금융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11월 예금은행들의 기업대출은 3조5000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쳐 10월(7조3000억 원)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에 은행들이 한은이 요구하는 지급준비금을 넘겨 한은에 예치한 초과지급준비금은 9월 이전 2조 원 정도에서 지난달 10조 원 정도로 늘었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기업의 신용위험도를 보여주는 회사채 금리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국고채 금리와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풀린 돈이 다시 국고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문제는 어느 기업을 믿고 돈을 빌려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기업 자금난 연내 해소는 어려울 듯

연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라는 금융당국의 독려도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는 이유다. 부실 업체에 대출해 줬다가 탈이 나면 연말 결산 때 고스란히 BIS 비율에 반영돼 건전성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에 대한 정부출자를 대폭 늘려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보증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기업에 돈이 흘러가지 않는 상황은 최소한 각국 은행들의 연말 실적이 발표되는 내년 1월 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각국 은행의 연말 실적 결과에 따라 한국 금융시장도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내부적으로는 신뢰할 기업과 아닌 기업을 선별해주는 기업 구조조정이 얼마나 빨리, 제대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신용경색 지속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구조조정

정부, 은행 통한 자율적 구조조정에 무게

일부선 “악화되기전 미리 손봐야” 지적도

정부는 현재 대주단(채권단) 협약, 중소기업 패스트트랙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은행이 자율적으로 기업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유도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구조조정 전담기구인 기업재무개선지원단을 발족했지만 역할은 측면 지원 정도다.

정부로서는 구체적인 기업의 환부(부실)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는 데다 수술(구조조정)이 꼭 필요한지, 아니면 투약(자금지원)만으로 정상화될 수 있을지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보니 외환위기 때와 달리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 선제적인 대응 vs 자율적인 구조조정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금융감독위원회 산하에 구조조정 전담조직인 구조개혁기획단을 만들고 이를 활용해 2000년 8월까지 11개 은행, 6개 증권사, 13개 보험사, 458개 기타 금융회사를 정리했다. 금융회사 외에도 64대 그룹 소속 부실기업 55개를 정리하는 등 과감하고 신속하게 나섰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는 점에는 이견(異見)이 없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때에 비하면 기업의 건전성이 크게 개선됐다”며 “외환위기 때 사실상 죽은 상태의 기업을 처리했다면 지금은 상황에 따라 사망할 수도, 나을 수도 있는 암 초기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수술 없이 나을 수도 있고, 수술을 했다가 악화될 수도 있다 보니 전문가 사이에서도 치료 방법을 두고 다른 의견들이 나오는 것.

연세대 유병삼 경제학부 교수는 “이대로 두면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의 부실이 점점 커져 경제 전체가 악화될 수 있으므로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평소대로라면 은행이 대출 회수나 연장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을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경우 단기적으로 은행 자신의 부실채권이 늘어나게 돼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 개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고려대 이만우 경영대 교수는 “정부가 구조조정에 직접 나서면 나중에 특혜 시비가 불거지는 등 부작용의 소지가 많다”며 “은행들이 자신의 재무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부실 대출을 줄이고 기업들이 자구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범위도 부실 우려가 있는 기업 전반에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조선 건설 해운 등 특별히 문제가 되고 있는 업종에 한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 경제상황 따라 구조조정 범위·강도 달라져

정부는 아직 직접 개입할 단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9일 ‘구조조정은 채권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도 “외환위기 경험을 떠올리면서 신속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상황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건설업 등 일부 업종이 문제지만 세계경기가 더 악화돼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위축되면 대부분의 업종이 타격을 입게 되고 그때는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미국처럼 당장 정부가 나설 단계는 아니지만 세계경제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 둬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처럼 대비 없이 휩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부동산

수요감소→집값 하락→건설사 자금난 ‘악순환’

서울 아파트값 지난달 0.8%↓

紡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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