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상류층 소비 구조조정 중… 최상위층도 지갑 닫기 시작

  • 입력 2008년 11월 28일 23시 20분


연 수입 1억3000만 원 정도의 맞벌이 부부인 경영컨설턴트 조모(37) 씨는 요즘 허리띠를 바짝 조이고 있다. 1년간 다녔던 헬스클럽을 지난달부터 그만뒀다. 100만에 이르는 연간 회원비가 부담스러워서다. 철마다 새 옷을 장만했던 아내(34) 올해는 옷장 속 코트로만 겨울을 날 생각이다.

조 씨는 "가입한 펀드도 반 토막이 나고 8억 원에 이르던 집값도 1억 원이 떨어졌다"며 "회사 사정이 나빠 연봉도 깎일 것 같아 불필요한 지출부터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내수 시장의 '큰 손'인 중산층 이상의 지갑이 닫히고 있다. 금융위기 속에서 소득이 줄고 부동산 주식마저 하락하면서 중산층 이상이 생활필수품 이외의 추가 지출을 억제하는 '소비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중산층 이상도 '소비 구조조정'

28일 비씨카드에 따르면 이 카드사가 '비(非)생활필수 소비 업종'으로 분류한 헬스클럽 피부미용실 여행 등 20개 업종의 10월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 줄었다.

전체 카드 매출액은 같은 기간 9.3% 증가했는데 중산층 이상이 주 고객인 이들 20개 업종의 매출액은 감소한 것. 이들 20개 업종이 전체 카드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87%로 지난해 10월(18.37%)보다 2.5%포인트 줄었다.

주5일제와 '몸짱' 열풍으로 인기를 끌었던 헬스클럽과 피부미용실 매출액은 지난해 10월보다 각각 27.1%, 21.0% 감소했다. 칵테일바, 골프용품 판매점, 시계·귀금속·액세서리 판매점 등의 카드 매출도 1년 전보다 15%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사(―9%), 백화점(―7%), 의류 판매점(―7%), 가구 판매점(―11%) 등의 매출액도 감소세를 보였다.

서울 종로구의 한 헬스클럽 매니저는 "예전에는 3개월이나 1년 짜리 회원권을 끊는 고객들이 많았지만 최근엔 한 번씩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끊거나 아예 그만두는 고객도 많다"고 말했다.

반면, 음식료품과 휘발유 등의 생필품의 카드 결제는 급증하고 있다. 불필요한 소비를 최대한 줄이면서 생활 필수품은 현금 대신 카드로 결제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 10월 음료·식품업종의 비씨카드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9% 급증했다. 슈퍼마켓과 주유소의 매출액도 지난해 10월보다 각각 33.6%, 24.3% 늘었다.

●최상위층 '큰 손'도 소비 둔화 진행

고액 자산가 등 최상류층의 소비는 큰 폭으로 꺾이지는 않았지만 소비 둔화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골프장이나 골프연습장 10월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감소했다. 호텔 매출도 4.1% 줄었다. 외제차 카드 매출은 8월과 9월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30.7%, 53.2% 증가했지만 10월 들어서는 증가세가 2.9%로 크게 둔화됐다.

김태진 비씨카드 지식관리부장은 "외환위기와 카드대란 이후 사치품 등의 소비가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처음"이라며 "최상위층은 중상류층보다 자기 과시 성향이 강해 소비가 천천히 둔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가격이 하락하는 '자산 디플레'가 본격화하면 소비에 영향을 미쳐 소비 심리가 더 빠르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자산가들이 실제 소득은 줄지 않았더라도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미래 소득이 불투명해져 불안해하고 있다"며 "이러한 심리적 요인이 소비 위축으로 나타나면서 실물 경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원식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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