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의 ‘악몽’ 되살아나나

  • 입력 2008년 10월 29일 03시 02분


루비니-크루그먼 “달러 비축 위해 한국 등 신흥시장 공격 가능성” 경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주범 중 하나였던 헤지펀드가 이번에 또다시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헤지펀드의 위력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패잔병’ 신분으로 아시아 금융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정부와 금융계 안팎에서는 가능성은 낮지만 헤지펀드가 여전히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로 국내 외환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며 경계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투자자 대거 이탈로 패잔병 신세지만

변동성 큰 원화공략해 시장교란 우려”

정부 “펀더멘털 과거와 달라” 분석속 예의주시

○ 외환위기 주범 헤지펀드의 유령

미국의 경제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 씨와 미국발 금융위기를 2년 전에 예고했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잇따라 해외 헤지펀드의 한국 공격 가능성을 경고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도 27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은행 시스템의 위기 이외에 헤지펀드 역시 신흥시장의 위기를 더하고 있다”며 러시아 한국 브라질을 곤경에 빠진 신흥시장으로 꼽았다.

이는 대체로 10년 전 외환위기의 경험 때문이다. 1997년 초 경상수지 적자와 몇몇 대기업의 부도로 외국인 투자가의 투자심리가 약해지면서 자본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는 원화 가치 하락 압력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쏟아 붓기 시작하자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 등 전 세계 헤지펀드들은 일제히 레버리지 효과를 이용한 차입 투자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원화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 은행에서 원화를 빌려 달러화를 사들이는 것으로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 싼값에 원화를 사들여 은행에 갚고도 상당한 규모의 달러화 수익을 챙기는 방식이다. 정부는 결국 외환보유액을 소진하고서야 백기를 들었다.

○ 가능성 낮지만 경계해야

전문가들은 일단 1997년과 지금은 주어진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 전 세계 주식시장에 투자했던 헤지펀드들이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에 시달리면서 일제히 손절매에 나서는 처지로 몰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승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가의 자금 유출이 지속되고 있는데 특히 전 세계 헤지펀드의 절반 이상이 근거를 두고 있는 북미와 룩셈부르크, 케이맨 제도,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지역으로 자금이 급속도로 유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헤지펀드 전문 조사 기관인 ‘헤지펀드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헤지펀드는 7000여 개로,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2조 달러에 육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연기금과 기관 등 투자가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올 4분기(10∼12월) 헤지펀드의 자산은 30∼40% 줄어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정부는 1997년 상황이 재연되는 일은 없다는 의견이다. 손병두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은 “한때 서울 외환시장에 헤지펀드들이 들어왔었지만 지금은 환율 시장을 공격할 만한 여력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도 “기업들의 펀더멘털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며 “헤지펀드가 설사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전성기의 양상을 보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주식시장에서는 정부의 공매도 금지로 공격 수단이 제한됐지만 변동성이 극심한 외환시장에서는 헤지펀드들이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원화 가치 급락에 베팅하는 공격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폐쇄적으로 운용되는 헤지펀드는 뮤추얼펀드 등과 달리 투자자의 환매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요즘 주식을 내다 파는 게 금융위기에 취약한 국가의 외환시장을 공격해 손해를 벌충하기 위한 실탄 비축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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