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무너지면 금융 - 실물도 흔들…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2시 59분


땅사들여 ‘줄도산 뇌관’ 미리 제거

■ 정부, 건설사 토지매입 배경

건설사가 공공기관에서 산 땅뿐 아니라 자체 조성한 땅까지 정부가 매입하기로 한 것은 건설업계의 자금사정이 심각할 뿐 아니라, 매각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됐음을 보여준다.

이번 조치로 건설사의 단기 자금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택경기가 좋을 때 건설사가 무리하게 매집한 토지를 정부가 되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업계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정부가 방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건설사 자산유동화 지원

지금까지 건설사들은 주택용지를 2가지 방식으로 확보했다. 한국토지공사 등 공공기관이 분양하는 택지를 사거나, 도시 내 민간이 보유한 대지를 여러 건 매입해 공동주택지로 조성하는 것이다.

땅을 산 부동산개발회사들은 이른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으로 금융회사에서 공사대금을 조달했고, 시공사인 중대형 건설사는 개발회사가 이를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지급보증을 섰다.

분양이 잘될 때는 이런 연결고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최근 금융회사들이 공사 지연 사업장에 대해 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개발회사뿐 아니라 보증을 선 건설사들까지 어려움을 겪게 됐다.

개발회사와 건설사들은 보유 토지를 매각해 상환자금을 마련하려 하지만 토지를 사려는 곳이 없는 상황이다.

○ 경제위기로의 확산 방지

정부가 이번 대책을 내놓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경제의 면역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건설사의 연쇄부도가 금융기관이나 실물경제로 번져나갈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대책은 ‘금융사의 여신 회수 등으로 건설사 자금난 가속→건설사 줄도산→금융사 부실 심화→경제 전반에 위기 확산’이라는 연쇄폭탄의 도화선을 끊으려는 취지다.

정부는 토공이 토지 매입대금을 건설사가 아닌 채권은행으로 송금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은행 부채를 상환하고 남은 돈만 건설사 계좌로 보낸다. 토지 매각대금을 부채상환 이외의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대체로 토공이 매입하는 가격은 시세의 70∼80%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도덕적 해이 방조” 지적도

최근 3, 4년간 건설사들은 공공택지뿐 아니라 도심 자투리땅을 매입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주택용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입지가 좋은 땅을 선점해두면 나중에 높은 분양가를 받고 집을 지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토지 매매로 시세차익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땅투기를 한 것.

A건설 임원은 “한국에서 개발사업 자체의 사업성만을 겨냥해 사업을 하는, 제대로 된 PF란 사실상 없다”며 “그동안 곪아온 업계 관행이 이번에 실체를 드러낸 셈”이라고 말했다.

토공이 토지 매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토지개발채권을 대거 발행하면 공공 부문의 부채비율이 높아져 결국 국민 부담이 커진다.

이 때문에 “건설 및 금융업계의 무분별한 투자에서 비롯된 어려움을 국민의 돈으로 메워줘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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