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더 쓰자” GS “덜 쓰자”

  • 입력 2008년 10월 15일 02시 57분


대우조선 입찰가 못좁혀 결별

13일 오전 이구택-허창수 회장 담판도 ‘물거품’

《포스코와 GS그룹이 한 배를 탔다가 헤어지기까지는 4일 걸렸다. 두 회사는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한 본입찰 마감을 4일 앞둔 9일 오후 전격적으로 컨소시엄 구성을 선언했다가 입찰 마감 직후인 13일 오후 결별을 선언했다. 양측은 서로에 대해 ‘좋은 파트너’라고 표현했다. 서로 흡족한 파트너를 만나고도 왜 헤어졌을까. 》

○ 만남에서 이별까지

포스코와 GS그룹의 대우조선 인수팀 실무자들은 12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철야 회의를 했다. 9일 컨소시엄 구성을 발표한 뒤 나흘째 이어진 철야 회의였다.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도 가장 중요한 사안인 입찰 가격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일요일에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머리를 맞대야 했던 것.

포스코 관계자들은 김승연 회장의 인수 의지가 강해 한화그룹이 입찰 가격을 높게 써 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충분히 써 내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GS 측은 세계 금융 시장이 불안하고 금리가 오르고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GS그룹의 대우조선 인수팀장인 임병용 부사장은 “포스코는 ‘매우 공격적인’ 가격을 제시했고 우리는 ‘합리적으로 공격적인’ 가격을 제시했다”며 “많은 대화를 했지만 상당한 가격 차가 좁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GS는 자체 자금이 부족해 손을 잡은 해외투자가가 입찰 가격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았다.

13일 오전에는 이구택 포스코 회장과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협상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예정대로라면 실무진이 작성한 입찰 제안서에 사인을 한 뒤 대우조선 인수 건을 잘해 보자며 덕담을 나눠야 할 자리였다.

입찰가와 관련해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났지만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국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흘간의 웃음’이 사실상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양측은 제 갈 길을 간다.

포스코는 입찰 마감 시간에 임박해 포스코-GS 컨소시엄 명의로 산업은행에 입찰 제안서를 제출했다.

GS그룹 지주회사인 GS홀딩스는 이날 오후 긴급 이사회를 열고 컨소시엄 탈퇴를 결정하고 포스코에도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통보했다. GS는 이어 포스코 출입 기자들에게 짧은 e메일을 보냈다. 포스코와의 결별을 공식 발표한 것이었다.

임병용 GS 부사장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좋은 파트너였던 포스코를 비롯해 모든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 인수전 원점에서 다시 시작

두 회사의 극적이고 짧은 만남은 양측 모두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기게 됐다.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한 GS는 기업 신뢰도와 이미지에 타격을 받게 됐다.

GS는 그동안 2년 이상 대우조선 인수를 준비해 왔지만 막판에 갑자기 포기를 선언함으로써 투자자와 시장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컨소시엄을 구성한다고 발표한 지 나흘 만에 태도를 바꾼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그럴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컨소시엄 구성에 좀 더 신중해야 되지 않았느냐는 것.

그동안 굵직한 인수합병(M&A)에 뛰어들었다가 모두 실패해 ‘과감하지 못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실패했다.

GS 관계자는 “우리가 이번 매각 건에서도 실패해 ‘손이 작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피할 수 없게 됐지만, 상도의를 어긴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포스코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대우조선을 단독으로 인수하기로 결정했지만 역시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GS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기 전에도 자금력 등에서 인수 후보 기업 중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GS와의 결별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될 처지에 놓였다. 이동희 부사장은 이날 열린 3분기 기업설명회에서 “정말로 좋은 파트너를 만났는데 인수 조건에 대한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았다”며 “포스코는 처음부터 단독 인수를 준비해 왔고 GS가 빠졌지만 지금도 단독 인수할 준비는 다 돼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GS의 컨소시엄 발표로 사실상 코너에 몰렸던 한화와 현대중공업은 포스코와 GS의 결별로 기회를 잡게 됐다. 하지만 한화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 기억과 잇따른 M&A에 따른 자금 사정 부담이, 현대중공업은 같은 조선업체인 대우조선 내부의 강한 거부감이 각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은 후보 3개사의 본격적인 인수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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