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배반의 경제학

  • 입력 2008년 10월 9일 22시 54분


모르긴 해도 지금 미국의 경제주체들은 ‘쇠고기 시위’를 바라보는 심정일 것 같다. 대통령은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MBA)이고 재무장관은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 출신, ‘경제 대통령’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벤 버냉키 의장은 1929년의 대공황을 전공한 경제학자다. 그런데도 대공황을 방불케 한다는 21세기 첫 글로벌 금융위기에 무력하기 짝이 없다.

‘리만 브라더스’ 경제위기 키웠다?

경제를 잘 안다는 우리 대통령, 외환위기를 겪어냈던 기획재정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야당에서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잃은 근본 이유가 리만(‘이’명박+강‘만’수) 브러더스의 잘못된 현실인식과 말 바꾸기 때문이라고 공격할 정도다.

어떤 대응책도 안 먹히니 국내외 ‘비판적’ 지식인 사이에선 “시장경제 문제 있다”에 이어 “경제학은 틀렸다”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예일대 경제학 교수 로버트 실러는 “신뢰가 깨졌다는 게 문제인데 그건 금융학에서 정통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했다.

주류 경제학의 기본 전제가 합리적 인간이다. 현실은 이를 사정없이 배반한다. 우리도 쇠고기 시위에서 익히 본 바다. 합리적으로 따지면 분명한 사실도 흥분하면 안 보이기 십상이다. 사람마다 나름의 이익과 가치에 따라 효용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경제학의 전제부터 틀렸다면 경제 전문가들의 정책이 쉽게 통할 리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잉태한 원인으로 꼽히는 탐욕과 공포 역시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에 또는 복수에 눈이 먼다는 말은 괜히 나오지 않았다. 투자든, 투기든 인간행동 자체가 탐욕과 공포 간의 전투이고 할까 말까의 갈등이자 고스톱 게임이다. 사람이 합리적이라면 ‘못 먹어도 고!’를 할 리가 없다.

다행히 나 혼자 비합리적인 게 아니어서 남들도 탐욕이 뻗칠 때 거품이 생기고, 그게 지나쳐 공포가 몰려올 때 패닉이 벌어진다. 집이든, 펀드든 된다 싶으면 몰려들고(쏠림) 값이 떨어지면 그간 까먹은 게 억울해 붙들고 있거나(손실 혐오) 값이 오른다고 더 오르길 고대하며 꽉 잡고 있다가(과신) 큰 손해를 자초하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고수익에다 저위험까지 갈구하는 비합리성이 우리 안에 있는 이상, 어떤 규제가 나와도 또 다른 경제위기는 피할 수 없다는 걸 각오해야 할 것 같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낮아 경제가 잘 돌아갈 때마다 세상엔 주식 붐이나 자산 붐이 일어났고, 경기 사이클과 맞물려 거품이 꺼지면 한참을 고생했다. 기억력마저 합리적이지 못해 손실의 고통마저 1년이면 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 새로 생긴 규제를 교묘히 회피한 혁신적 상품이 나와서는 비슷한 과정을 반복했던 게 금융의 역사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돈을 버는, 즉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람이 있어 질투와 희망을 동시에 안겨준다. 워런 버핏이 대표적이다. 그가 투자의 귀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감정을 무시할 줄 아는 능력에 있다. 버핏의 변호사이자 투자 파트너인 찰스 멍거는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간단히 답했다고 한다. “난 이성적이거든요.”

이성의 회복이 해법이라면

결국 이게 주류경제학의 기본 전제다. 지금 글로벌 금융위기의 해법으로 거론되는 내용도 대체로 이성을 회복하고 냉정하게 대처하라는 데서 시작한다. ‘경제학은 틀렸다’는 행동주의 경제학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도 최근 미국 갤럽과의 인터뷰에서 “남들이 감정적일 때 냉철해야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말로 뜻밖의 배반을 했다.

설령 경제학이 맞든 틀리든,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인간이 만든 가장 덜 나쁜 제도가 정치에선 민주주의이고 경제에선 시장인데, 민주도 시장도 견제와 균형은 필수라는 사실이다. 세상이 탐욕이나 공포로 치달을 때일수록 이성을 통한 의식적 견제와 균형은 중요하다. 인간본성이 합리적이지 못하듯 정부 역시 그런 인간본성의 집합체라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될 일이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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