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키코피해 더 방치 못할 상황”

  • 입력 2008년 9월 27일 03시 00분


“무작정 지원땐 모럴해저드 불러”

손실금 대출로 전환 - 대출 만기 연장 논의

대상 선별 어려움… 은행책임 논란도 계속

■ 금융당국 구제대책 진통

환율 급등으로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Knock in Knock out)’에 가입한 중소기업의 흑자 도산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피해를 방치하다가 자칫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주는 위기로 비화할 수 있어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은행권의 불만과 기업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겹쳐 지원 대상과 방법을 둘러싸고 진통이 예상된다.

○ “키코 흑자도산 막아라”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26일 연쇄 회의를 갖고 키코 피해 기업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날 오전 은행연합회와 시중은행 여신 실무자들이 지원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오후에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금융감독 당국과 시중은행 여신 책임자들이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협의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519개 기업이 키코 거래로 1조4781억 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환율이 당시보다 100원 이상 올랐기 때문에 손실액도 2조 원 안팎으로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논의 중인 대책은 은행권이 키코 손실액에 대해 대출 전환 등을 해줘 기업의 흑자 도산을 막고, 기업의 채권 발행에 보증기관이 보증을 서는 방안으로 압축되고 있다.

은행권은 이날도 키코 가입에 따른 손해액이나 키코 계약 중도파기에 따른 손실금을 대출로 전환해주거나 기존 대출금의 만기를 연장해주기 위한 기준 등을 주로 협의했다. 또 은행권은 키코 손실금을 대출로 전환할 때 보증기금이 보증을 서는 등 대출 부실화에 따른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의 파생상품 담당자는 “은행은 키코 상품을 판 뒤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바로 반대매매를 하기 때문에 얻은 수익은 수수료에 불과하다”며 “헬리콥터에서 뿌린 돈을 여러 사람이 주워 갔는데 은행 보고 책임지라는 식”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 선별 지원 가닥…‘도덕적 해이’ 논란도

은행권의 불만과 기업의 도덕적 해이 논란 등으로 키코 피해를 본 모든 기업에 대한 지원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지원 대상과 방법 등을 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부 기업은 여러 은행에 나눠 키코에 가입하는 등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의 ‘투기’를 했다”고 말했다.

진병화 기술보증기금 신임 이사장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피해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지원하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 있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보 측은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이나 기술 사업에 따른 현금 흐름을 기초자산으로 한 ‘기술유동화증권(TBS)’을 발행해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소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를 묶어 이를 담보로 발행하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CBO)’의 부분 보증을 서는 방안도 대안으로 꼽힌다.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에 나서더라도 은행의 키코 불완전 판매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업은 은행이 키코 상품의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대출 만기 연장 등을 빌미로 키코 가입을 강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이 키코를 불완전 판매했다는 증거를 아직 찾지 못했다”며 “기업과 은행이 법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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