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투자… 나몰라 판매… 파생상품 손실 키웠다

  • 입력 2008년 9월 24일 03시 06분


《부산에 사는 이모(46) 씨는 2005년 정기예금을 해약해 마련한 돈 3억 원을 모두 파생상품 펀드에 투자했다. 이 상품의 현재 수익률은 ―40%. 이 씨는 “당시 은행원은 안전한 국공채에 투자하기 때문에 원금 손실이 날 확률이 ‘대한민국이 망할 확률’과 같은 상품이라고 안내했다”고 주장했다. 이 펀드는 최근 유동성 위기에 빠진 미국 금융회사들의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률이 악화되는 상품이었다.》

○ 투자자 금융사 책임둘러싸고 ‘네탓’ 공방

이모(27) 씨는 올해 5월 주가연계펀드(ELF)에 투자했다. 이 상품은 현재 ―43.96%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은행원이 상품 구조를 설명해줬지만 솔직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가입했다. 그 은행원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 ‘정기예금보다 금리도 높고 원금 손실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말만 기억난다”고 말했다.

일부 파생상품 투자자는 금융사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반면 상품을 판매한 은행, 증권사들은 투자자들의 ‘묻지마 투자’ 행태를 문제 삼는다. 국내 한 증권사 지점의 차장은 “직원들이 투자자에게 리스크를 알려주지만 투자자 중에는 위험은 과소평가하고 높은 수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파생상품 투자 실패 사례를 보면 투자자와 판매자 모두 복잡한 상품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파생상품은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불러온 주요 요인 중 하나. 국내에서도 파생상품은 일부 투자자의 피해를 넘어 국가경제의 문제로 확대될 조짐을 보인다. 매출 6000억 원대의 건실한 중소기업인 태산LCD는 최근 은행과의 통화옵션 상품 계약으로 수백억 원의 손실을 보고 부도 위기에 몰렸다.

○ 리스크관리 시스템-‘묻지마 투자 문화’ 서로 돌아볼 때

국내외 내로라하는 기업들도 과거 파생상품 투자 실패로 막대한 손실을 보거나 파산했다. 이들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SK증권 등 3개 기업이 ‘다이아몬드 펀드’를 만든 뒤 신용파생상품을 이용해 5300만 달러를 차입해 총 8700만 달러를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에 연계된 채권에 투자했다. 루피아 가치가 상승하면 이익을 얻고 하락하면 손해를 보는 구조. 예상치 못했던 동남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큰 손해를 봤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한 분기도 손실을 내지 않고 연평균 40% 수익률을 올렸던 미국의 헤지펀드 LTCM도 위험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파산한 사례. 모두 리스크 관리 부족, 미래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을 가졌던 것이 실패 이유로 지적된다. 이런 사례에도 불구하고 국내 파생상품 시장은 2000년대 초반 본격적인 증시 확장기를 맞아 파생상품의 위험성이 제대로 투자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공룡처럼 불어났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몸집만 커진 것이다.

2003년 3조5000억 원이었던 주가연계증권(ELS) 시장은 지난해 26조 원 규모로 컸고 ELF 설정액은 현재 20조 원이 넘는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김완중 연구원은 “아직도 기업의 투자 담당자, 금융권 종사자들은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투자자와 판매자 모두 이번 기회에 파생상품 투자문화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파생상품:

채권 통화 주식 원유 등 기초자산의 가격이나 가치의 움직임에 따라 값어치가 결정되게 설계된 금융상품이나 계약을 뜻한다. 최근에는 날씨 죽음과 연관된 파생상품도 나왔다.

파생상품은 급격한 주가 하락 등 미래의 예측하기 힘든 위험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기초자산의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투자가 가능해 ‘투기용’으로도 종종 쓰인다. 파생상품은 선물 옵션 등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장내파생상품’과 ELS, ELF, KIKO 등 금융기관과 투자자 간에 거래가 이뤄지는 ‘장외파생상품’으로 나뉜다. 장외파생상품은 금융기관과 투자자 간의 계약 형식으로 판매되고 있어 최근 KIKO 손실을 둘러싸고 판매사와 투자자 간에 책임 공방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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