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ravel]현장에서/눈가리고 아웅 자동차 연비왕

  • 입력 2008년 9월 24일 02시 06분


기름값이 비싸지면서 자동차 연료소비효율에 민감한 운전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운전자들의 마음을 간파한 자동차 회사들은 잇따라 ‘연비왕’을 뽑는 이벤트를 열어 자사(自社) 차량의 높은 연비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자동차 회사들의 이런 이벤트는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최근 폭스바겐코리아의 연비왕 선발 대회다. 이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파사트 2.0 TDI 스포트’ 운전자의 연비는 L당 49.07km, 2등은 41.55km가 나왔다. 이 모델의 공인연비는 13.9km다. 무슨 비결이 있기에 공인 연비보다 최대 3.5배에 이르는 연비가 나왔을까.

하지만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차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스페어타이어를 떼고, 일부는 뒷좌석 시트까지 제거했다. 1등에겐 100만 원짜리 상품권이 걸려 있으니 애교로 봐줄 수 있다. 문제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인천공항까지 75km의 주행 거리가 연비 테스트를 하기에는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연비왕 대회’에서는 기름을 가득 채우고 주행한 뒤 다시 기름을 가득 채우는 방법으로 기름 소모량을 측정한다. 참가 차량에 측정기를 달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채택하는 이런 측정 방식은 오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오차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 200km에서 1000km까지 주행거리를 잡는다.

동아일보 자동차팀이 GM대우자동차 ‘젠트라X’의 연비를 테스트하기 위해 같은 방식으로 기름 소모량을 측정한 적이 있다. 150km를 주행한 뒤에 기름을 넣었는데 처음에는 3L밖에 안 들어갔다. 그대로 계산하면 L당 연비가 50km에 이른다. 하지만 기름을 조금씩 흘려서 넣자 3L가 더 들어갔다. 주유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연비가 두 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차의 성능이나 운전 실력 대신 ‘연비 주유’를 한 운전자가 연비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주행 거리를 최대한 길게 하는 것이 행사의 기본이다.

박동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은 연비 테스트를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짧은 게 아니냐는 질문에 “고객들이 즐기기 위해 마련된 행사여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행사 뒤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탁월한 연비가 입증됐다”고 자랑했고 일부 언론은 여과 없이 보도했다. 어설픈 연비 테스트로 소비자들을 현혹시켜서는 안 된다.

황진영 기자 buddy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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