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기자의 ‘Driven’]기아자동차 ‘포르테’

  • 입력 2008년 9월 24일 02시 06분


중형차 흉내쟁이는 가라

반박자 빠른 다크호스 ‘포르테’

준중형 충실한 디자인 ·묵직한 핸들링… 안정감 ↑… 내장재 마감재질 아쉬워

‘이대로는 승산(勝算)이 없다. 변칙적인 공격이 희망이다.’

허영만 화백의 대표작 중 ‘변칙복서’라는 만화가 있다. 1982년 나온 이 작품의 줄거리는 발레강사인 아버지의 강요로 발레를 배워야만 하는 주인공이 몰래 태권도를 배운 뒤 다시 권투에 진출해 동양챔피언까지 노린다는 내용으로 펼쳐진다. 주인공은 태권도를 바탕으로 변칙적인 복싱스타일을 자신만의 기술로 완성해 성공을 거둔다.

기아자동차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준중형 세단 ‘포르테’를 시승하면서 오래전에 본 만화 변칙복서의 주인공이 오버랩 됐다. 자동차를 만드는 방식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나 변칙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중형차인 척하는 준중형에서 벗어나 준중형만의 개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경제적인 고려로 중형차를 사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구입하는 준중형이 아니라 뜻이다.

기아차 정의선 사장이 줄거리를 쓰고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 총괄 부사장이 그림을 그린 포르테라는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될지는 결국 소비자의 몫이다.

○ 기아차만의 DNA를 창조

국내 자동차회사들이 준중형 세단을 만들 때 가장 고려하는 점은 ‘중형차 닮기’다. 중형차처럼 부드러운 승차감에다 커보이는 디자인이 기본이다. 그래서 이름도 ‘준중형’이다. 대신 준중형만의 개성은 살리지 못했다.

포르테는 여기에 변칙을 시도했다. 현대자동차 ‘아반떼’를 살짝 손봐서 내놓는 기존의 방식을 답습한다면 아반떼의 아성을 뛰어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소형차인 준중형에 어울리는 스포티한 디자인과 날렵한 핸들링을 적용했다.

우선 디자인은 앞쪽이 낮고 뒤가 높은 쐐기형이고 루프라인을 쿠페처럼 유선형으로 처리해 차체가 작아 보인다. 중형차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디자인에서 이탈했다는 뜻이다. 트렁크 윗부분에는 뾰족한 스포일러를 더했다. 이런 디자인 요소들 때문에 포르테는 작으면서 상당히 스포티해 보인다.

둥글둥글 무난한 디자인이 아니어서 구매계층이 좁아질 수도 있는 모험적인 시도다. ‘아반떼’와 같은 플랫폼(차체의 뼈대)과 엔진을 쓰기 때문에 확실히 다른 느낌을 주지 않으면 국내는 물론 글로벌시장에서 아반떼를 넘어설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영상취재 : 통합뉴스센터 이성환 기자

○ 뛰어난 핸들링과 브레이크

스포티한 디자인에 어울리는 핸들링이 인상적이다. 시승한 포르테는 1711만 원짜리 ‘SLi’ 모델이다. 1.6L 엔진에는 다소 무리인 듯한 17인치 휠에 215/45 타이어가 휠하우스를 가득 채우고 있어 스포티한 느낌이 더욱 강조된다.

우선 운전대가 무겁다. 아반떼는 손가락 하나로 운전대를 빙글빙글 돌릴 수 있지만 포르테는 제법 근육을 사용해야 한다. 주차할 때나 골목길에서 여성운전자들은 약간 힘들어 할 수도 있는 정도다. 대신 속도가 올라가면 묵직한 핸들링이 안정감을 준다. 운전대가 가볍게 휙휙 돌아가지 않아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하고 고속주행에서는 직진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차로를 변경하거나 급한 커브길에 들어가기 위해 운전대를 움직이면 기존 준중형 세단들보다는 반 박자 정도 빨리 반응이 온다. 편평비가 낮은 17인치 타이어와 함께 서스펜션이 비교적 강하다. 이 때문에 연속해서 좌우로 차로를 바꿀 때 차체가 출렁거리는 정도가 아반떼에 비해 억제돼 있다.

코너링도 만만치 않다. 스포티 쿠페를 운전하는 느낌을 준다. 약간 무리한 듯하게 코너에 진입한 뒤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도 차체 앞부분이 바깥쪽으로 미끄러지는 언더스티어 현상도 별로 나타나지 않고 깔끔하게 돌아나간다. 기존 준중형 세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시속 160km를 넘는 고속주행에서도 안정감이 높아졌다.

브레이크 또한 묵직하면서 잘 잡아준다. 고속주행을 하면서 반복적인 급제동을 걸어도 끈기 있는 성능을 보여준다. 페달에 발만 올려도 팍팍 서는 스타일은 아니고 밟는 압력에 따라 점진적으로 제동력이 증가하는 스타일이다.

○ 무난한 동력 성능과 만족스러운 연비

동력 성능은 딱 1.6L 엔진이 할 수 있는 만큼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5∼12.0초. 최고속도는 GPS기준으로 시속 175km까지 올라갔다. 국내 1.6L 엔진 가운데 가장 출력이 높은 124마력이지만 출력 향상이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주행거리가 짧은 새 차여서 길들이기가 끝나면 5% 정도 성능이 올라갈 수는 있다. 서스펜션과 브레이크의 성능이 앞서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엔진의 힘이 약하게 느껴졌다.

반면 연료소비효율은 좋은 편이다. 체증구간만 아니라면 서울 시내 주행에서 L당 9∼10km 정도를 갈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 안팎으로 정속주행할 때 연비는 16km까지도 올라갔다. 계기반에 순간연비와 누적연비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나와서 경제운전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옥에 티’는 역시 포르테에도

포르테의 광고 콘셉트는 ‘럭셔리’다. 그러나 광고는 광고일 뿐이었다. 포르테가 럭셔리카를 잡아먹는 TV광고에 기대를 걸고 실내에 앉았을 때 첫 이미지는 괜찮았다. 대시보드와 블랙하이그로시 트림이 들어간 운전대 등 전반적인 감각은 참신하다. 계기반과 각종 스위치류의 디자인이나 작동감도 좋고 붉은색 백그라운드 조명이 세련된 분위기도 연출했다.

그러나 내장재의 마감재질은 아쉬웠다. 부드러운 감촉이 없고 모두 딱딱한 플라스틱 느낌이어서 싼 맛이 났다. 원가 절감의 흔적인 모양이다. 바람소리는 적었지만 엔진음과 타이어의 노면 마찰 소음이 다소 크게 들리는 점도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후륜 서스펜션은 독립 방식에서 일체형인 토션빔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포르테의 상큼한 핸들링으로 볼 때 성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뒷좌석 승차감이 독립 방식에 비해 떨어지는 단점은 피하지 못했다. 운전대가 전동식으로 바뀌면서 핸들링 감각이 이질적으로 변한 점도 다듬어야 할 부분이다.

여러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포르테의 전반적인 상품성은 이전 모델인 쎄라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특히 하이패스 내장 룸미러와 버튼 시동장치, 수동모드 자동변속기 등이 돋보인다. 핸들링과 코너링, 디자인 등의 측면에는 국내 최초의 스포츠 세단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다만 가격도 높아졌음을 잊지 마시기를.

기아차가 주는 다양한 혜택을 누리려면 최소한 1711만 원을 지불해야 하고 모든 편의장치를 넣은 최고급 모델은 2096만 원에 이른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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