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은 은행 특별자금

  • 입력 2008년 4월 9일 02시 57분


태안 기름 유출 등 재난 발생 때 지원 위해 편성

금리혜택 없고 담보 요구… 中企 “생색내기” 지적

경기 고양시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모(45) 사장은 1월 말 한 시중은행에서 설날 특별자금으로 2억 원을 빌렸다. 신용대출로 빌리는 금리는 연 8% 정도로 일반 대출금리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 사장은 “조건은 크게 유리하지 않았지만 자금이 부족해 ‘더 빌릴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담보를 내놓으라고 하더라”며 “담보가 충분하면 왜 특별자금 대출을 받겠느냐”고 말했다.

설, 추석 등 명절이나 태풍,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 등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시중은행들이 배정하는 특별자금이 사실은 은행들의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자금이라지만 일반 대출과 마찬가지로 담보나 보증서를 요구하거나, 금리 등의 혜택이 미미한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실제 중소기업 등이 빌려가는 금액은 은행이 당초 편성한 액수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A은행은 지난해 9월 태풍 ‘나리’로 피해를 본 현지 기업 및 주민을 위해 특별자금 1000억 원을 편성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0월 말까지 실제 빌려준 돈은 92억 원이었다.

이 은행은 당시 기업에 5억 원, 개인에게 2000만 원까지 빌려준다고 발표했지만 이 한도를 다 쓸 수 있을 만큼 신용평가를 받은 자금 수요자는 많지 않았다. 금리를 1%포인트 낮춘다고도 밝혔지만 이는 지점장의 재량으로도 평소에 낮춰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B은행도 1월 중순 태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 기업에 10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달 7일까지 대출 실적은 30건, 52억 원에 그쳤다.

이에 대해 A은행 관계자는 “특별자금을 편성하는 것은 ‘은행의 공공성 등을 고려해 그런 재원을 마련했다’는 뜻일 뿐 회수 가능성을 대충 따지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때문에 이 돈을 쓸 만한 요건을 갖춘 수요층이 넓지 않아 특별자금 발표가 생색내기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며 “특별자금 대출규모를 모두 채웠다고 밝힌 은행 중에는 이와 무관한 대출을 합해 숫자를 늘리는 곳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국민, 외환 등 일부 은행은 몇 년 전부터 특별자금 편성을 중단했다.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은 “은행들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특별자금을 관행적으로 편성하기보다 평시에 성장성이 높은 중소기업을 발굴해 돈을 빌려주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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