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지, 대한민국 ?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이물질에 놀라고…거짓말에 분통 터지고

《21일 오후 5시경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한 대형할인점.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함께 장을 보던 주부 강미정(35) 씨는 진열대에서 새우깡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 아이도 이물질이 든 새우깡을 먹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강 씨는 “참치 캔에서도 녹슨 칼날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고 소름이 확 끼쳤다”면서 “‘참살이(웰빙)’ 식품이라는 제품들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과자류 진열대 주변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한 주부는 “새우깡이 재수 없어서 걸렸지, 다른 과자도 다 비슷할 것 같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

기업 “쉬쉬”- 당국 솜방망이 처분 ‘불감증’

외국선 “이물질 나오면 망한다” 관리철저

서울 도봉구 창동에 있는 또 다른 대형할인점의 두부 시식코너. 이지영(44) 씨는 두부를 집어 먹으려다 생각을 바꿨다. 이 씨는 “콩을 제대로 갈아 만들었는지, 이물질을 섞어 만들었는지 어떻게 알겠느냐”면서 “식품 안전사고가 하도 많이 터지다 보니 이제는 무감각해지는데 이런 무감각이 더 무서운 것 같다”고 말했다.

연이은 식품 안전사고로 불안해진 주부들이 자녀에게 직접 간식을 만들어 먹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기 군포시 산본동에 있는 한 대형할인점에서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밀가루 판매대를 메웠다. 주부 진서희(32) 씨는 “평소에도 식품첨가물이 많이 든 과자가 못미더웠는데 이참에 집에서 직접 과자를 만들어 먹이기로 했다”며 “그런데 이 밀가루는 안전한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한민국 식품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연일 굵직굵직한 식품 사고가 터지고 있다. 엄마들은 식품을 잘못 먹였다 아이가 잘못될까 봐 불안에 떨고 있다.

동원F&B의 ‘동원 라이트스탠다드 참치캔’ 제품에서 발견된 칼날은 공장 시설 수리과정에서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조사가 이날 나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처구니없는 식품안전 불감증이다.

국내에 유통 중인 옥수수와 옥수수 가루 일부에서 발암성 곰팡이 독소인 ‘푸모니신’이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국내에는 푸모니신 기준치조차 없어 관리 자체가 되지 않는 실정이다.

식품 사고가 터질 때마다 관리당국의 늑장대응이 지적되고 있다. 고작해야 제품을 회수하고 행정처분을 내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새우깡에서 생쥐머리가 나왔을 때는 중국 현지공장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유일한 대응책이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경우 과자에서 이물질이 검출되면 그 기업은 부도사태를 맞기도 한다. 그만큼 품질과 안전관리에 철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쉬쉬하고 숨기려 할 뿐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

동원F&B는 참치 칼날을 신고한 소비자에게 참치선물세트를 줘서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농심은 이물질을 제보한 시민에게 라면 3상자와 보상금 50만 원을 주고 사태를 덮으려고 했다.

이민석 고려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식품업체들은 식품안전 관련 소비자 불만이 접수됐을 때 이를 보건당국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기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중국 등 위생 취약 국가에서 만든 제품일 경우 식품위생안전센터라는 신뢰도 있는 기관의 조사를 거쳐 수입하는 일본처럼 우리 정부도 검증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동원F&B ‘칼날참치’ 사과

동원F&B는 ‘칼날 참치’ 파문과 관련해 21일 “잇따른 이물질 발견 소식으로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죄드리며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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