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카페]유통과 제조 ‘상생의 길’ 있다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제조업체가 상품을 만들어 유통업체에 납품할 때 납품가격은 두 회사 간의 협상을 통해 결정됩니다. 하지만 말이 협상이지, 힘의 균형이 강력한 구매력을 가진 유통업체 쪽으로 기울다 보니 상당수 제조업체는 유통업체에 끌려 다니기 마련입니다. 제조업체들은 이 과정에서 각종 불공정 거래와 횡포, 압력이 작용한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최근 동아일보에 3회 시리즈로 보도한 유통 파워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느낀 현장의 분위기는 단순한 불만 이상이었습니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업체 관계자들과 접촉할 때 나온 첫 반응은 대부분 “누구 밥줄 끊을 일 있느냐”였습니다.


▶본보 19일자 B1면 참조
[유통파워]<상>가격 결정권은 내손에

▶본보20일자 B3면 참조
"[유통파워]<중>성장의 그늘, 불공정 거래

▶본보 21일자 B3면 참조
[유통파워]<하>생존 위한 도전과 경쟁

자기는 횡포에 시달리고 있지만 자칫 신문에 기업 이니셜이라도 나가게 되면 유통업체 측이 당장 ‘조사’에 착수해 불이익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에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대형마트나 백화점 외에는 판로가 없는 중소업체는 더 했습니다.

이런 관행은 유통업체가 스스로 노력을 덜 하고 손쉽게 이익을 올리려는 데서 비롯됩니다. 유통업체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판매 가격을 낮추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납품업체를 ‘쥐어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유통업체들도 이런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글로벌 소싱이나 해외 진출 등으로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제조업체들에도 유통업체의 압력을 불만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라고 주문합니다. 서울대 경영학과 주우진 교수는 “서구에서도 유통업계의 납품 단가 인하 요구에 제조업체가 고민하는 사례가 많지만 많은 기업이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 이에 대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보다 대형마트의 시장점유율이 더 높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제조업체가 살아남은 비결입니다. 주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 영업이익률이 비슷한 반면, 미국이나 유럽은 제조업체 영업 이익률이 유통업체의 3배쯤 된다는군요.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지만, 이런 사례들을 보면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의 판로를 개척하고 제조업체는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상생(相生)의 가능성은 분명 열려 있는 셈입니다.

주성원 산업부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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