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펀드!… 글로벌 폭락장서 ‘불면의 밤’

  • 입력 2008년 1월 24일 03시 13분


코멘트
2295만 계좌 국민펀드시대

글로벌 폭락장서 ‘불면의 밤’

《“며칠 사이 1000만 원 넘는 돈이 날아갔는데 일할 마음이 나겠습니까. 그만 한 돈을 다시 저축하려면 1년은 꼬박 걸릴 텐데….” 대기업에 다니는 박모(45·여) 부장은 며칠 전부터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지난해 초부터 연말까지 중국펀드 등 국내외 6개 펀드에 나눠 넣은 1억 원의 수익률이 최근 세계 증시가 급락하면서 마이너스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근무시간에도 인터넷에 들어가 수익률을 확인하지만 그때마다 떨어진 수익률을 보며 현기증이 난다. 그는 “주식 투자를 싫어하는 남편은 돈이 예금에 들어가 있는 줄 안다”며 “남편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답답해 죽겠다”고 말했다. 》

최근의 글로벌 증시 급락으로 잠 못 이루는 펀드 투자자가 늘고 있다. 손해 보며 환매하자니 억울하고, 그냥 들고 있자니 불안하다.

● 펀드 투자자들 억장 무너져

통계청은 현재 한국의 총가구 수를 1642만 가구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의 펀드계좌는 이보다 많은 2295만 개로 가구당 1.4개의 펀드에 가입한 셈이다.

펀드 가입자가 많은 만큼 고민하는 사람도 많다. 5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회사원 장모(28) 씨는 요즘 약혼자에게 말 못할 고민에 빠졌다.

장 씨가 2종류의 펀드에 넣은 돈은 총 2200만 원. 지난해 수익률이 한창 좋을 때는 4000만 원까지 불어났지만 지금은 2600만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는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환매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며 “하지만 결혼 준비를 해야 할 3, 4월에는 환매해야 할 텐데 주가가 더 떨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해외주식형펀드 등 4개 펀드에 8000만 원을 넣은 송모(54·여) 씨는 요즘 아예 수익률을 점검하지 않는다. “겁이 나서 도저히 확인할 엄두가 안 난다”고 송 씨는 말했다.

● 빚 낸 투자자들은 더 괴롭다.

그나마 여윳돈으로 펀드에 들어간 사람들은 좀 나은 편. 빚을 내서 투자한 ‘개미 투자자’들에게 요즘 주식시장을 지켜보는 것은 큰 고통이다.

회사원 이모(36) 과장은 지난해 7월 은행에서 3000만 원을 마이너스 대출로 빌려 주식에 2500만 원, 펀드에 500만 원을 투자했다. 그가 산 주식은 반 년 만에 33% 하락했고 펀드 수익률은 마이너스 5%다. 1250만 원을 이미 손해 본 데다 대출 이자로 그동안 나간 돈만 120만 원 정도.

이 과장은 “소형 승용차 한 대 값을 날렸다”며 허탈해했다. 집을 사기 위해 빌린 주택담보대출 때문에 매달 180만 원의 이자 부담을 안고 있어 그는 더욱 괴롭다.

코스피지수가 2,000 선을 넘나들던 지난해 10월 한 달간 국내 시중은행들의 신용대출은 2조8000억 원 증가해 전달인 9월 증가분(6000억 원)의 4배가 넘었다. 금융권에서는 주식 또는 펀드에 투자하기 위해 대출받은 사람들 때문에 신용대출이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22일 현재 국내 및 해외 주식형 펀드의 최근 3개월 평균수익률은 각각 ―16.45%와 ―18.58%. 요즘 주변에서 펀드 수익률 때문에 “TV조차 보기 싫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성준(26·서강대 영문학과 4년) 강유현(23·고려대 영문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