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CEO 발닿는 곳에 돈脈 보인다

  • 입력 2008년 1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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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그룹 박현주 회장은 올해 새해 벽두부터 인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비서를 제외하곤 목적지가 어딘지 그룹 내 임원들도 전혀 몰랐다.

미래에셋그룹 관계자는 “박 회장은 출장을 떠났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행선지를 바꿔 관심이 가는 나라를 방문한다”면서 “어디에 다녀왔는지는 간부회의에서 여행 기간 중 구상한 사업 계획에 대해 설명을 들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영국 홍콩 베트남 브라질 등에 열흘간 출장을 다녀온 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올해 자산운용사의 무대는 인도, 중국을 넘어 브라질, 러시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에셋은 홍콩 싱가포르 영국 인도에 이어 올해 안에 다섯 번째 자산운용사를 브라질에 설립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2000년대 초에도 중국, 인도를 자주 방문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투자하는 ‘펀드 지도’를 남보다 미리 구상해 이후 큰 수익을 내기도 했다.

이처럼 금융계 핵심 인물들의 해외 출장은 새해 사업이나 중요한 투자 의사 결정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최근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비롯해서 펀드 매니저나 투자자들에게는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이 연말연시에 다녀온 출장지가 중요한 투자 정보다. 이들의 행보를 주목하면 돈의 흐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유상호 사장은 지난해 12월 3박 4일 일정으로 말레이시아를 다녀왔다.

유 사장은 “주요 원자재의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동남아 자원부국의 성장 잠재력을 느낄 수 있었다”며 “중국 이후 대안시장으로 좋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자원부국. 최근에는 이슬람 오일머니의 최대 투자처로 중동에서 막대한 오일머니가 들어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유 사장은 출장을 다녀온 뒤 ‘금융실크로드 아세안허브 국가’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선정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달 7일부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상장 주식에 투자하는 ‘인니말레이 펀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실익(實益)이 없는 해외 출장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진 하나은행 김종열 은행장은 지난해 말에 베트남과 중국을 방문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현지에서 금융업의 리스크 관리가 어느 정도 가능한지 중점적으로 살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김 행장은 출장 이후 올해부터 해외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해 그룹 전체 자산 대비 해외자산 비중을 2010년까지 1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굿모닝신한증권 이동걸 사장은 지난해 7월 인도네시아에 다녀온 뒤 현지 통신기업 지분 투자를 위해 실무팀을 파견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 사장이 당시 출장을 통해 인도네시아가 섬이 많은 국가이면서 2억4000만 명의 인구 대국인 점에 주목했고 중산층 확대로 통신업이 발전할 것으로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국투신운용 강신우 부사장은 “금융 소비자들의 수요가 글로벌화됨에 따라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잠재시장을 미리 보고, 직접 발굴해내는 CEO의 통찰력과 역할이 점점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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