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넘는 ‘서브프라임 쇼크’… 은행금고 이어 지갑도 ‘꽁꽁

  • 입력 2007년 11월 29일 03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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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發 신용경색, 세계 실물경제 위협

손실규모 눈덩이… 은행들 대출 줄이자 금리 크게 올라

돈가뭄 장기화땐 신용카드-車할부 대출까지 부실 가능성

일본銀 총재 “심각한 재난”… 日-유럽도 성장률 하락 우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제 시작이다.”(월스트리트저널)

“앞으로 수년간 펼쳐질 고통스러운 이야기의 첫 장이라는 사실을 시장이 인식하기 시작했다.”(파이낸셜타임스)

9월 시작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여파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내년까지 계속될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는 등 세계 경제를 위협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당초 사태의 여파가 단기간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던 미 금융당국과 세계의 금융권은 바짝 긴장한 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 우려했던 실물 경제 위협 현실화

앨런 허버드 백악관 경제보좌관은 27일 CNBC-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1년 전에 비해 분명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핵심 보좌관이 이 같은 부정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주택시장 경기가 가장 심각하다. 미 시장(市長)협의회는 최근 “미국이 지난 16년 사이 최악의 주택시장 침체를 맞았으며 이로 인해 내년에 미 부동산 시장에서 1조2000억 달러가 증발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국은 소비가 경제를 떠받치는 구조다. 미국이 지금까지 장기 호황을 구가하면서 소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집을 담보로 한 저금리 대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 주택 경기가 하락하고 모기지에 타격을 입는다는 것은 일반인들의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미국의 소비는 전 세계 경제를 지탱한다. 미국의 소비가 줄어들면 한국처럼 미국에 수출해 먹고사는 나라들의 수출이 타격을 받아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지게 된다.

후쿠이 도시히코(福井俊彦) 일본은행 총재는 국제 금융시장의 소요를 우려하면서 ‘심각한 재난’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8일 전했다.

일본 은행들이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본 피해는 일본의 2007 회계연도(내년 3월 말 종료)에 모두 6260억 엔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고 교도통신이 27일 전했다.

영국산업협회(CBI)의 리처드 램버트 사무총장은 23일 “확언하건대 신용경색이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시장에서 돈이 마른다”

금융경색이 실물 경제를 위협하는 것은 ‘시장에서 돈이 말라가는 것’을 통해서다. 집값 하락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비고, 금융기관은 대출을 줄여 기업들은 돈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더욱이 금융기관들이 금융시장의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금고를 굳게 닫아 서로 빌려 주기를 꺼려 금융경색을 가속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7일 금융기관들이 언제 어떤 은행이 위험에 처할지 불신이 높아 대출에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기관 간 이자율 상승이 이런 상황을 잘 말해 준다.

우량은행 간 단기자금 대출 금리인 리보(LIBOR)나 디폴트(지불불능) 사태 시에 적용하는 금리도 급속히 오르고 있다. 27일 3개월물 달러화 표시 리보(영국 은행 간 차입 금리)는 5.06%로 이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금융시장이 ‘돈 기근’을 맞자 유럽중앙은행(ECB)은 26일 300억 유로의 자금을 금융 시장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28일 80억 달러를 긴급 투입했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 예상보다 큰 것이 원인

처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만 해도 미국 당국은 손실 규모를 500억 달러로 추산했다. 그러나 미 금융당국은 이를 이달 들어 15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손실이 이보다도 2, 3배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씨티그룹이 모기지 부실로 입은 손실만 해도 150억 달러에 이른다. 이로 인해 회장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른 씨티그룹은 급기야 신용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투자청에 지분 4.9%에 해당하는 전환사채(CB)를 넘기고 75억 달러를 수혈받기로 26일 결정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모기지 업체이자 업계에서 가장 ‘위험 관리’를 잘하는 곳으로 소문난 웰스파고는 27일 모기지 부실로 인해 4분기 결산에서 14억 달러를 대손 상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기지 부실뿐 아니라 다른 대출 부문에서도 부실이 불거질 우려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금처럼 자금이 돌지 않고 경제가 나빠질 경우 신용카드 대출, 자동차 할부 대출 부문 등에서도 ‘제2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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