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통화도 못하는 ‘토익선수’ 안뽑아”

  • 입력 2007년 11월 14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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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린 유명 토익(TOEIC) 강사의 특강에서 대학생들이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구직자들의 토익 점수가 크게 오르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그룹 스터디’를 하는 등 토익 점수를 높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린 유명 토익(TOEIC) 강사의 특강에서 대학생들이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구직자들의 토익 점수가 크게 오르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그룹 스터디’를 하는 등 토익 점수를 높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기업들 공채시험 영어평가방식 변경

《“인터넷 취업사이트에 올린 한 지원자의 면접 후기를 보고 올해 처음 영어 면접이 도입된 걸 알았어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본사. SK에너지가 이달 8일부터 진행 중인 신입사원 공채 3차 면접시험을 치르고 나온 민모(22·여·서울 노원구 상계동) 씨는 “영어 말하기 평가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기업이 많지 않아 영어 면접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SK에너지는 지난해 공채에서 1분 정도의 ‘영어 프레젠테이션 평가’를 도입한 데 이어 올해는 영어 면접을 추가했다. 영어 말하기 등 실무 능력을 직접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영어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채용 방식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영어를 쓰고 말하는 능력보다 어학시험 점수를 높이는 데 매달리는 취업 준비생이 많은 게 현실이다.》

기업들 “토익 변별력 약해… 말하기평가 도입”

구직자들 “9당8락”… 아직도 고득점 매달려

전문가 “기업요구 맞춰 실무영어 능력 키워야”

○20대 기업의 절반, “평가 방식 변경”

동아일보가 2006년 기준 국내 매출액 상위 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신입사원 채용 시 영어 평가 현황’을 조사한 결과 기업들의 영어 평가 방식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조사 대상 기업 중 9곳은 올해 신입사원 채용에서 영어 면접 등을 이미 추가했거나, 내년 채용부터 말하기 등 영어 실무능력 평가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토익 토플 등 공인 인증시험 점수만으로는 지원자의 영어 실무능력을 평가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어학시험 점수는 높지만 영어 구사능력은 떨어지는 ‘고득점 토익선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계 컨설팅회사 관계자는 “한국인 직원의 영어 실무능력이 너무 떨어져서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라며 “고급 영어 구사는커녕 영어로 e메일조차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한국전력 KT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5곳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1차 서류전형에서 토익 등 영어 인증시험 성적을 반영한 뒤 2, 3차 전형에서 개별적으로 영어 면접이나 영어 프레젠테이션 등을 실시해 왔다.

토익시험의 영어 변별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일부 기업에서는 아예 토익을 말하기 능력 평가로 대체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

○구직자 울리는 ‘영어 거품’

이번 조사 결과 20개 기업 중 SK그룹 계열사인 SK텔레콤 SK에너지 SK네트웍스를 제외한 17개사는 토익 성적을 1차 서류전형에서만 반영했다. 지난해 신입사원 채용에서 합격자들의 평균 성적은 824.3점, 800점 이하인 기업도 5곳(32%)이나 됐다. 신입사원 평균 토익 점수가 700점에 불과한 회사도 있었다.

한편 올해 10월 한 취업정보업체가 내년 2월 졸업 예정인 4년제 대학 재학생 1168명을 대상으로 토익 성적을 알아본 결과 평균 716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가스공사 GS칼텍스 KT 삼성전자 삼성생명 국민은행 등 6개사는 ‘토익 점수 620∼750점(회사별) 이상’ 취득자에게만 응시 자격을 주는 등 토익 성적을 ‘지원 조건’으로만 활용했다. 토익 성적이 높아도 가산점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치열한 ‘취업 전쟁’에 뛰어드는 구직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900점 이상은 붙고, 그 이하는 떨어진다는 ‘9당(當) 8락(落)’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취업을 준비 중인 김모(26·숙명여대 4년) 씨는 “토익 성적이 800점대여서 900점 이상을 받기 위해 7월부터 매월 시험을 보고 있다”며 “토익 성적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900점대 중반 이상을 받아야 안심이 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시험용 영어보다 실전 영어가 중요”

취업 전문가들은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여 주기 위한 어학 성적보다 영어를 듣고 말하는 실무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하반기(7∼12월) 공채부터 말하기와 작문능력 평가가 포함된 ‘토익 말하기·쓰기 평가(TOEIC S&W)’를 도입하고 이 결과를 면접 전형에서 10% 반영하기로 했다.

SK텔레콤도 올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서 사전에 녹음된 상황을 듣고 지원자가 영어로 말하는 ‘컴퓨터 구술 평가’를 도입했다.

삼성그룹은 내년 공채부터 영어 말하기 시험인 ‘오픽(OPIc)’을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황선길 잡코리아 컨설팅사업본부장은 “구직자들이 취업할 때 무엇이 유리할지 몰라 막연히 영어 인증시험의 성적을 올리는 데만 매달리고 있다”며 “기업들의 요구에 맞춰 취업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 영어 말하기 시험 어떤게 있나▼

오픽- 삼성 도입검토… 컴퓨터로 평가

토익- 응시생 급증… 올해 6만명 예상

G-TELP- 1987년부터 시행… 道公 등 활용

영어를 듣고 말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영어 말하기 시험’에 대한 취업 준비생들의 관심이 높다. 영어 점수보다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기업들이 신입사원 공채에서 영어 말하기 시험을 속속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치러지는 영어 말하기 시험은 ‘토익(TOEIC) 말하기 시험’, ‘오픽(OPIc)’ ‘지텔프(G-TELP)’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은 시험은 올해 1월 처음 치러진 오픽이다.

이 시험은 전미외국어교육협회(ACTFL)가 개발한 영어능력평가시험(OPI)을 컴퓨터로 치르는 영어 말하기 시험이다. 최근 삼성그룹이 내년 신입사원 공채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취업 준비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2만여 명이 응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기업의 한 인사팀 관계자는 “영어 실무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방법을 검토 중”이라며 “삼성그룹의 결정에 따라 영어 말하기 시험이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토익 말하기 시험은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처음 시행됐다. 영어 문장 읽기, 질문 듣고 답하기, 의견 제시하기 등으로 나뉘어 약 20분간 진행된다. 컴퓨터에 녹음된 지원자의 답변을 미국 교육평가원(ETS) 소속 평가자가 채점하는 방식이다.

최세열 한국토익위원회 부장은 “올해 들어 ‘토익 말하기 시험’ 응시자가 매달 30∼40%씩 늘어 연말까지 모두 6만여 명이 응시할 것으로 본다”며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삼호중공업 등이 올해 신입사원 선발에 이 시험을 활용했고, 내년에는 응시생이 15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국제테스트연구원(ITSC)이 개발한 지텔프 말하기 시험은 1987년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영어 말하기 시험 가운데 역사가 오래된 시험 중 하나다.

조윤숙 지텔프 코리아 기획팀 차장은 “항공안전본부, 한국도로공사, 현대제철 등이 신입사원 채용 시 이 시험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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