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쌓아둬야 안심” …“투자는 신중 또 신중”

  • 입력 2007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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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없지만 모험도 없다

《“한국의 외채 규모가 1100억 달러인 반면 외환보유액은 150억 달러에 불과해 한국은 금융위기로 빠져 들고 있다.” 1997년 11월 5일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는 그해 7월 2일 태국 밧화 가치 폭락으로 시작된 외환위기가 마지막까지 버티던 한국에 상륙했음을 알렸다. 한국 정부는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유동성 조절 자금)을 신청해 12월 3일 협약이 체결됐다. 외환위기 10년.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3장(長), 3단(短) 현상이 나타났다. 외환보유액 증가와 환율 개선 및 소득 증가 등의 체질 개선이 이뤄졌다. 반면 저성장 기조, 수출의존형 경제 구조 심화, 과잉 유동성에 의한 버블 현상과 양극화 등도 나타나고 있다.》

■외환위기 10년…아시아국 경제 어떻게 달라졌나

‘불안한 빚쟁이’의 변신

외환보유액 급증… 환율 10년전 수준 회복

국내총생산 등 주요 경제지표 꾸준히 호전

‘파이 키우기’엔 한계

투자 줄며 저성장 구조 정착… 수출의존 심화

넘쳐나는 달러로 부동산-증시등 거품 우려도

○ “다시 환란 올 것 같지 않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발간된 회고록 ‘격동의 시대’에서 “금융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10년 만에 불안한 빚쟁이에서 첨단엔진으로 변모했다”며 “다시 환란이 올 것 같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의 이러한 평가는 주요 지표로 입증된다.

외환위기를 겪은 각국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외환보유액(금 포함)의 확충이었다. 한국이 1997년 204억 달러에서 2006년 2389억 달러로 10배 이상 늘었고, 태국은 268억 달러에서 669억 달러로 늘었다.

달러 대비 환율이 한국은 1997년 말 951원에서 1998년 1398원까지 치솟았으나 지난해 955원으로 떨어져 10년 전 수준을 회복했다. 지금은 9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환란의 도화선이 됐던 태국 밧화도 1997년 미 달러당 31밧에서 지난해 44밧까지 올랐으나 최근에는 31밧으로 10년 전 수준을 회복했다.

최근에는 달러화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들 국가의 중앙은행이 절상 속도 과속을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사들이고 있는 형편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한국이 1997년 1만1200달러에서 2006년 1만8374달러, 태국은 2565달러에서 3200달러로 각각 올랐다.

○ 또 다른 그림자

외환위기를 겪은 후 새롭게 나타난 우려할 만한 대표적인 현상은 저성장 기조다.

외환위기 이전 연평균 9%의 고성장을 보였던 태국은 1998년 ―10.5%로 주저앉았다가 최근 4∼5%로 회복됐다. 인도네시아는 외환위기 이전 10년간 연평균 7% 수준이었으나 5%대로 둔화됐다. 한국도 1990∼1997년 연평균 7.0%에서 2000∼2006년 4.5%로 낮아졌다.

이 같은 저성장은 과거와 같은 왕성한 투자 의욕이 줄어들었기 때문. 양적 성장을 추구하다가 환란을 맞은 탓에 신중한 투자로 돌아선 것도 원인이다.

투자 부진은 GDP 대비 투자율 하락에서 두드러진다. 1995년 각각 42.1%와 31.9%였던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GDP 대비 투자율은 2006년 27.9%와 24.6%로 떨어졌다. 한국은 1997년 35.0%에서 지난해 30.5%로 낮아졌다.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아시아 각국에서 수출의존형 경제구조가 심화한 것도 취약점으로 지적된다.

호주의 경제분석가 맷 로빈슨 씨는 동남아 국가의 대외교역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6년 38%에서 지난해 61%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다만 늘어난 대외교역이 과거처럼 미국 등 서구 시장 일변도가 아니라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역내 시장의 확대로 인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그동안 쌓인 외환 등 과잉 유동성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부동산과 주식에 거품이 생길 우려도 제기된다.

또한 경제 개방과 경쟁 범위의 확대로 한국에서는 양극화 심화가 화두로 등장했다. 인도 중국 등 저임금 국가의 도전을 받으면서 능력 위주의 고용 및 임금체계를 도입한 데 따른 현상이다.

○ “환란 방어 체질 강해졌지만 성장 잠재력 낮아졌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은 7월 발표한 ‘아시아 환란 10년’ 보고서에서 환란의 원인이 됐던 단기 차입금과 부동산 투자 과다, 정치권력에 의한 자의적인 자원 할당에 따른 부실 채권 양산 등의 요소들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위기의 증상이었던 화폐가치 폭락, 자본 유출, 증시 폭락, 인플레이션 등은 개선됐으며 금융 개혁과 규제 투명화, 기업 지배구조 강화 등이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환란 이후 나타난 아시아 경제의 ‘체질 변화’로 위기의 재발 가능성은 낮아졌다. 하지만 투자 부진으로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생활수준 향상의 토대인 ‘파이 키우기’가 부실해질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과도한 외환 축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외부 금융충격에 대한 ‘보험’이 되지만 일정 수준을 넘으면 ‘기회비용’이 커져 경제 사회적 효용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러화를 쌓아두기보다 국내 투자로 유도하거나 비달러 자산에 대한 투자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편 태국의 정정 불안과 외환 규제로 인한 투자 환경 악화, 말레이시아의 통제형 중앙집권, 필리핀의 잇단 부패 스캔들 등이 ‘환란 후 아시아’의 잠재 위험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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