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시를 진단한다]<下>고장난자금조달기능

  • 입력 2007년 10월 17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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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꺼리는 기업들 “주식 발행 왜 해?”

올해 상반기(1∼6월) 기업들이 주식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로 늘어났다. 2006년 전체 자금조달 금액보다도 많은 7조3789억 원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체 금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3조7500억 원은 신한금융지주의 LG카드 인수를 위한 유상증자 금액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이후 1년 동안 코스피지수는 448포인트 올랐고 시가총액은 130조 원이 늘었지만 신한금융지주의 유상증자를 제외하면 자금조달 실적은 거의 증가하지 않은 셈이다.

증시에는 폭발적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주식을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 기능은 위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주식시장의 본질적 기능이 퇴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증시가 ‘반쪽짜리 증시’로 불리는 이유다.

○손바뀜은 상위권, 자금조달은 중위권

세계거래소연맹에 따르면 한국 증시는 시가총액, 거래대금, 상장기업 수 부문에서 세계 증시 10위권에 올라 있다. 그러나 유독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 순위만큼은 23위에 불과하다. 반면 주식의 손 바뀜 정도를 뜻하는 상장주식 회전율은 7위로 순위가 높다.

최성섭(경영학) 경원대 교수는 “주식시장이 재테크만을 위한 투기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주가가 올라도 경제 전반을 보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 주식이 제대로 발행되지 않을뿐더러 유통이 가능한 주식도 줄어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에만 1조6400억 원을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썼다. 지난해 자사주 매입에 쓴 1조6100억 원을 이미 넘어선 금액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기업들이 주가 및 경영권 방어를 위해 증시에서 자사주를 사들이는 데 쓴 돈은 모두 5조6000억 원. 같은 기간 유상증자 금액(6조5600억 원)과 큰 차이가 없다.

2006년에는 국내 기업의 자사주 취득 금액(6조5900억 원)이 같은 기간 기업공개와 유상증자 등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 금액(6조5000억 원)을 웃돌기도 했다.

반면 적립식펀드 변액보험 등 간접투자가 활성화되고 연기금 주식투자 비중이 확대되면서 올 상반기 월평균 2조 원가량의 자금이 증시에 유입됐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업공개 위축, 상장사의 유상증자 감소,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으로 유통 가능 주식이 줄어드는 반면 주식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도 주가 상승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역동성 잃은 한국 경제, 증시에도 투영

한국 증시의 이 같은 상황은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말 기준 코스피시장 12월 결산법인 527개 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 규모는 53조3000억 원에 이른다. 기업 내부에 쌓아 둔 현금이 많으니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경제가 역동성을 잃어 기업이 투자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 데다 상장을 할 만한 기업은 이미 상장한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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