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사회봉사 명령’ 법조계 논란

  • 입력 2007년 9월 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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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적 근거가 없다.” “그런 명령을 하지 말라는 법규정이 어디 있느냐.”

법원이 6일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에게 개인 재산을 사회에 내놓기로 한 사회 환원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라는 사회봉사 명령을 내린 것을 둘러싸고 법조계 내부에서 비판적 의견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 회장 사건을 선고한 재판부는 앞서 4일에도 비슷한 취지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증권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권모(43)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면서 “40억 원 이상을 상가 관리단에 출연하라”고 명령한 것. 이 사회봉사 명령엔 “관련 사건의 민사재판에서 패소할 경우 판결에 따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형법상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 사회봉사를 명령할 수 있고, 보호관찰법에 따르면 사회봉사는 500시간의 범위 내에서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법조계 인사들은 “재판부가 명령한 사회봉사의 내용이 법이 정한 범위를 넘어섰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7일 “법무부의 사회봉사 명령 및 집행규칙은 사회봉사를 ‘일정 시간 무보수로 사회에 유익한 근로를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며 “대법원 예규에 규정된 사회봉사 내용에도 (재산의) 사회 환원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법원 예규 7조에 따르면 △자연보호 활동 △복지시설 및 공공시설 봉사활동 △대민지원 봉사활동 등은 사회봉사에 포함되지만 재산의 사회 환원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

법원이 벌금형을 선고할 수 없는 사건에서 이 같은 사회봉사 명령을 통해 정 회장에게 사실상의 벌금형을 부과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변호사는 “정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로 보면 벌금형을 선고할 수 없는 사건인데 재판부가 ‘사회 환원’이라는 사회봉사 명령을 통해 사실상 정 회장에게 8400억 원의 벌금형을 부과한 것”이라며 “집행유예 선고에 따른 여론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고 말했다.

정 회장에게 신문에 기고를 하라는 사회봉사 명령은 헌법상 특별히 보호돼야 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지역의 한 변호사는 “정 회장은 재판을 받는 동안 ‘나는 당시 그런 게 죄가 되는 줄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면서 “재판부가 ‘준법경영’을 주제로 신문 등에 기고하라고 명령했는데 이는 평소 자신의 생각과 다른 취지의 글을 쓰라고 요구하는 것일 수 있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이귀남)는 “정 회장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법원이 명령한 사회봉사의 형태가 상당히 이례적이어서 법이 허용한 한계를 넘어선 것이 아닌지 대법원의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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