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탈출” 주요 그룹, 새 성장동력 찾기

  • 입력 2007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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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그룹이 기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는 것은 올해 안에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에서 영원히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지 않으면 5년, 10년 후 ‘먹을거리가 소진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재계에 확산되고 있다.

○ ‘샌드위치 한국’ 팽배한 우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재계 총수는 올해 초부터 한국 경제의 위기를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다.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다는 정부의 낙관적 견해와 달리 이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한국 경제의 미래는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이 회장은 올해 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회의에서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 가는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고 한국 경제를 진단한 뒤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게 한반도의 위치”라고 말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또 3월에는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5, 6년 뒤에는 큰 혼란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올 1월 시무식에서 “글로벌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무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도전정신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똘똘 뭉쳐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자”고 당부했다.

지난해 어려운 한 해를 보낸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3월 연구개발보고회에서 “고객과 시장에 대한 예민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LG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기술과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미개척 분야 도전 쉽지 않아 고민”

재계 총수들의 이 같은 우려 속에 국내 주요 그룹은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전면전에 돌입했다.

계열사별로 사업구조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는 삼성그룹 관계자는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전면 재평가해 계열사 간, 사업부 간 ‘힘의 배분’을 다시 하게 될 것”이라며 “9월부터 내년 경영계획을 수립하는데, 사업구조 개편에 따른 인사, 투자계획 등은 내년 1월에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기 사이클이 5∼10년 주기인데 지금은 외환위기 이후의 성장세를 재검토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다른 주요 그룹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현대·기아차그룹에서는, 주력이던 저가(低價) 소형차 시장에서 중국이 급속하게 격차를 좁히고 있어 고가(高價) 대형차 시장에서 일본 독일 등과 맞붙어 이기지 못하면 생존이 힘들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존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로는 5년 후를 기약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를 어떻게 재정립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명운이 갈릴 것”이라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그룹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분야가 많아 인수합병 등을 통해 손쉽게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방식은 큰 의미가 없다”며 “미개척 분야에서 신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 크다”고 지적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기업 모시려는 미국▼

‘25 대 1’

요즘 인기가 있다는 한국 공무원시험의 경쟁률이 아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2010년까지 미국에 13억 달러를 투자해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공장을 짓겠다고 2004년 여름에 발표하자 무려 25개 주(州)가 공장 유치를 신청하고 나섰다. 미국 전체 주(50개)의 절반이다.

도요타는 2년 반에 걸친 검증작업 끝에 올해 2월 최후의 승자를 발표했다. 2억9400만 달러(약 2700억 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한 미시시피 주의 투펠로가 행운을 잡았다.

요즘 미국은 각 주 및 시 정부마다 기업투자 유치경쟁에 불이 붙었다.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공도 주저하지 않는다.

기아자동차도 조지아 주 웨스트포인트에 공장을 짓는 것과 관련해 모두 4억 달러의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받았다. 기아차가 고용할 인원은 2900명이지만 부품업체 고용인원을 포함하면 실제로 생기는 일자리는 훨씬 많다.

미국 남부 주들은 도요타, 닛산, 현대자동차 등 해외 자동차공장을 유치하면서 이처럼 각각 3억 달러 안팎의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하고 있다.

기업투자 유치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도시들의 인센티브 제공 규모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경제주간 비즈니스위크 최근호(7월 23일)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 주 러노어 시는 구글의 컴퓨터 센터를 유치하면서 2억1200만 달러의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했다. 고용인원은 210명이니 인센티브 제공 액수로만 보면 1인당 100만 달러에 달했다. 말 그대로 ‘백만 달러짜리 직장’인 셈.

러노어 시는 구글 컴퓨터 센터가 들어설 공장 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퇴거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별거 중인 부부의 이혼 위자료까지 대신 내 주기도 했다.

인센티브 형태도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세제 혜택이나 땅 제공, 현금 인센티브는 물론 도로 개설을 약속해 주거나 전기 및 상수도 요금을 깎아 주기도 한다.

미국 도시의 기업투자 유치 및 인센티브 제공 액수
투자 기업도시(주)인센티브 액수(달러)고용 인원(명)
구글러노어(노스캐롤라이나)2억1200만210
세마텍올버니(뉴욕)3억450
도요타투펠로(미시시피)2억9400만2000
기아자동차웨스트포인트(조지아)4억2900
보잉에버렛(워싱턴)32억1200
닛산캔턴(미시시피)3억6300만4200
자료: 비즈니스위크, 기아자동차, 도요타자동차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제조업’ 떠나는 한국▼

국내 주요 기업의 해외 공장 설립 추세가 확산되면서 ‘제조업 공동화(空洞化)’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5일 주요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공장입지 애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88개사의 공장 설립 계획 106건 중 35건(33%)은 ‘해외 설립’이었다.

최근 4년간 88개 업체의 해외 공장 설립(신설, 증설, 이전) 건수는 24건으로, 국내외를 합쳐 이 기간 중 전체 공장 설립건수(90건)의 26.7%에 이르렀다.

향후 1∼3년 내 해외에 공장을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31.1%, 3∼5년 이내가 23.8%였으며, 5년 후 장기적으로 해외 공장 설립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도 47.4%나 됐다. 35건의 해외 공장 설립 계획에는 ‘신설’이 26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어 증설(8건) 이전(1건) 등의 순이었다.

전경련 측은 “장기간에 걸쳐 해외에 공장 신설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이 많아 상대적으로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는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응답 업체들은 현 정부 임기 4년 반 동안 공장 설립 관련 규제개혁 성과에 대해 ‘별로 성과가 없다’(54.6%)거나 ‘전혀 성과가 없다’(4.5%)고 답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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