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 대졸 99.2%…‘예쁜’ 9급, ‘슬픈’ 9급

  • 입력 2007년 5월 1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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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용인시청 기획예산과의 9급 직원 이모(27·여) 씨는 이른바 ‘시청 큰손’이다. 이 씨가 한 해 주무르는 10여 개 기금의 총액만 300억 원. 여기에 산하 공기업 3곳의 재정 관리와 3300억 원 규모의 투융자 사업 심의 업무도 그의 몫이다. 이 씨는 2005년 10월 9급 신규 직원으로는 처음으로 기금 및 공기업 관리 업무를 맡았다. ‘7급이 하던 일인데…’라며 우려하던 주변 직원들의 시선도 1년을 넘기면서 자취를 감췄다.

#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 경제학과를 나온 구청 9급 공무원 A(27) 씨는 요즘 동료들의 눈을 피해 공기업 시험을 준비 중이다. 그는 구청에서 과태료 미납으로 인한 자동차 압류해제 업무를 2년째 맡고 있다. 그는 은행에 취업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떨어지자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공무원이 됐다. 그러나 그는 “예전엔 공익근무요원들이 하던 단순한 일을 하고 있으려니 비애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예쁜’ 9급

‘9급=고졸’이라는 등식은 깨진 지 오래다. 중앙인사위원회에 따르면 국가직 9급 합격자의 경우 1986년에는 대졸(전문대 포함) 이상이 45.9%였다. 1996년에 91%로 오른 뒤, 2004년엔 99.2%까지 올랐다. 그 이후에는 학력 철폐를 이유로 이력서에 아예 학력란이 없어 통계가 없다. 그러나 각 부처의 인사담당자는 “요즘은 9급 시험 합격자 모두가 4년제 대졸 이상”이라고 말했다.

지방직 9급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에 따르면 9급 합격자 중 4년제 대학 이상의 학력자가 1996년에는 60.9%였으나 2006년에는 90.4%로 치솟았다.

외환위기 전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이른바 명문대 출신 9급도 요즘은 드물지 않다. 2005년 서초구청에 임용된 9급 직원 가운데에는 고려대 3명, 이화여대 3명, 연세대 1명 등이 포함됐다. 서울 용산구청에도 2003년 이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출신이 12명 들어왔다.

하위 직급에 이처럼 고학력자가 대거 몰리면서 일선 현장에서는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여파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우선 고학력 9급들은 변화 속도가 느린 공무원 조직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펼쳐 발탁 인사의 혜택을 얻기도 한다. 자극을 받은 간부들이 자기계발에 나서는 데 이어, 각 지자체는 새 인사 실험을 시행하는 등 아래로부터 개혁이 일고 있다.

‘슬픈’ 9급

그러나 취업난 속에서 ‘안정성’을 생각하고 9급 공무원이 된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단순·반복 업무에 지겨워하거나 좌절하고 있다. 상사의 눈을 피해 7급 공무원이나 공기업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조직에 새로운 피가 되지 못하고 조직의 분위기를 망치는 사례도 많다. 부산시의 한 고위 공무원은 “공무원은 무엇보다 국민에게 헌신하는 정신이 필요한데 고학력 9급 공무원들은 처음부터 승진에만 목을 매고 다른 직원들과 화합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하위직 공무원의 학력 인플레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한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성준 연구위원은 “안정성을 선호하는 개인의 선택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체 취업전선에서 나타나는 과잉 학력 현상은 한국사회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신호”라며 “동기 부여가 안 된 고학력 9급이 늘어날 경우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 전체의 고급 인력 활용 측면을 살펴봐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시 박종수 인사기획팀장은 “20%의 고급 인력이 나머지 국민 80%를 먹여 살리는 국제경쟁사회에서 단순 업무에 고학력자들이 몰리는 현상 자체가 국가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인적 자원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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