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차를 세워 제품을 팔았다. 자동차 정비업소를 방문해 “우리 물건 좀 써 달라”고 사정도 했다.
박희철(당시 부장) 사장은 그때 경기 구리시를 맡아 가두판매에 나섰다.
“당시 2개월 동안 전 직원이 40만 개 정도 팔았습니다. 싼 값에 팔아서 밥 먹고 숙박비 내고 나면 거의 남는 게 없었지만 우리 제품이 일반 소비자에게도 팔린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창립 초창기 닥친 위기를 힘겹게 넘긴 이 회사가 지금은 와이퍼 분야에서 세계 5위 기업으로 성장한 ‘캐프’다. 회사 이름은 삼선정공에서 2003년에 현재의 캐프로 바뀌었다.
○와이퍼 시장 세계 5위 기업으로
한국에서 생산되는 르노삼성자동차의 모든 와이퍼가 이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다.
지난해 매출 365억 원에 26억 원의 순익을 올렸다. 매출액의 57%인 153억 원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다. 올해는 매출 730억 원에 484억 원어치를 수출하는 게 목표다. 중국지사 직원을 포함해 전체 직원은 299명밖에 안 된다.
○삼성자동차 협력 업체로 시작
캐프는 1995년 삼성자동차의 협력 업체로 출발했다. 삼성자동차에 와이퍼를 독점 공급하는 대신 국내 다른 자동차 업체와 거래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1998년 12월 삼성자동차의 생산 중단으로 시작된 시련은 가혹했지만 회사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한 업체에만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에서 벗어나 공급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절실히 느낀 것.
해외시장 개척단을 발족시켜 외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열리는 자동차 부품 전시회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또 할인마트나 주유소, 자동차 정비업소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소매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크라이슬러와 GM 등에도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비결은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
박 사장은 “다른 부품과 달리 와이퍼는 작동 중 떨림이나 소음이 발생하면 운전자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만족을 얻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캐프가 짧은 기간에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R&D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연간 매출액의 8%인 30억 원을 R&D에 투자했다. 2006년 상장회사 531개사의 연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평균 2.38%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캐프가 R&D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하는지 알 수 있다.
과감한 R&D 투자는 세계 4번째,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플랫 와이퍼’를 생산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보쉬에서 처음 만든 플랫 와이퍼는 불필요한 프레임을 줄여 디자인이 뛰어나고 겨울철에 얼지 않는 등 성능도 우수하다. 독일 벤츠와 아우디의 대형 세단 승용차에 장착된다. ‘플랫 와이퍼=고급 승용차’의 등식이 성립돼 있다.
일반 와이퍼보다 50% 정도 비싼 가격에 팔리는 플랫 와이퍼는 캐프의 성장에 속도를 붙이는 새로운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 회사인 보쉬를 제치고 미국(3400개)과 캐나다(320개)의 월마트 전 매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도 플랫 와이퍼를 자체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지방 중소기업의 애로
지방에 본사를 둔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없을까.
고병헌 회장은 “우리가 원하는 인재를 채용하지 못하는 점 외에 다른 것은 별로 불편한 게 없다”고 말했다. 인재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고 물었더니 고 회장은 “서울보다 월급을 더 주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캐프의 미국지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 2명도 현지에서 채용한 해외 유학파다. 고 회장은 “회사에 필요한 인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다 지원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대구=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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