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시대, 글로벌 법률산업 ‘빅뱅’]<7·끝>한국 법률시장

  • 입력 2007년 4월 1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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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로펌들은 이제 ‘한국 로펌’이란 생각을 버리고 한국에 거점을 둔 다국적 고객을 서비스하는 로펌으로 변해야 한다.”

시들리 오스틴(홍콩)의 동아시아 지역 책임자인 알렌 김 변호사의 이야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로 개방의 파고를 맞게 된 한국의 법률 시장은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본보는 11, 12일 글로벌 로펌 4곳의 동아시아 지역 책임자와 국내 로펌의 국제중재 전문가 등 5명에게 한국의 기업 업무 담당 변호사 및 로펌이 갖춰야 할 경쟁력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제 게임은 글로벌 시장에서”=심프슨 새처 & 바틀릿(홍콩)의 박진혁 변호사는 한국 시장의 전망을 묻자 중국 이야기를 꺼내며 한국 로펌의 글로벌화를 강조했다.

“중국이 (법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동안은 아시아 법률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다. 그러나 이제는 흐름이 중국으로 옮겨 가고 있다.”

중국은 투명성과 법정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글로벌 로펌들 사이의 기본적인 인식.

그러나 박 변호사는 “중국은 한국만큼 규제가 많지만 경제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고 인구도 많다”고 평가했다. 투자자 처지에서는 한국에 비해 매력이 훨씬 크다는 얘기다.

“적지 않은 법률 리스크를 지면서도 중국을 선택하는 이유는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비용과 수익을 비교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더 큰 수익이 보장된다면 중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박 변호사는 전망했다.

▽‘토털 솔루션’이 중요하다=박 변호사는 “변호사에게 법률 지식의 제공은 기본”이라며 “한국의 변호사들도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많은 한국 변호사가 법률서비스가 법률 지식에 국한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기업 인수합병(M&A) 계약에서 순수한 법률 쟁점은 2∼3%밖에 없다. 법률 이슈는 경제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뭘 양보하고 뭘 확보해야 하는지 고객이 물을 때 법률 이슈에 대해서만 말해 주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 변호사도 “법률의 내용만을 조언해 주는 것으로는 고객의 주문을 충족시킬 수 없다. 포괄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으려면 고객의 산업 분야에 관한 이해와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법률 지식은 기본이며 국제적인 감각과 다른 국가, 다른 문화 등에 관한 이해도 갖추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클리어리 고틀리브 스틴 & 해밀턴(홍콩)의 한진덕 변호사는 전문 분야인 기업공개(IPO)를 예로 들어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해외에서의 채권, 주식 발행 업무에서 주식 인수 계약서들의 준거법은 모두 뉴욕법 아니면 영국법”이라며 “한국 로펌에도 미국법에 관한 의견서를 낼 수 있는 변호사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국 시장과 관련한 의견서를 제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시장, 서둘러 들어갈 생각 없다=미국의 인터넷 법률저널 로닷컴은 6일 “한국 시장이 가능성은 있지만 한국 시장이 모든 이에게 열려 있지는 않다”고 보도했다.

“한국으로의 확장은 신중해야 한다.…개방되자마자 세계 100대 로펌이 진출한 중국과는 많이 다르다.”

화이트 & 케이스(뉴욕)의 에릭윤 변호사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은 비용이 많이 드는 도시다. 특히 직원들의 월급과 사무실 임차료가 그렇다. 한국 로펌의 수익률은 최상위권의 미국, 영국 로펌들에 비해 떨어진다. 이것은 평균적인 한국 로펌들이 구조조정을 해 수익률을 높이기 전에는 국제적인 로펌들이 한국 로펌들을 합병 대상으로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박진혁 변호사는 이런 환경일수록 한국이 먼저 글로벌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한국의 M&A 시장에 거래가 많았지만 그런 기간은 지났다. FTA 이후 한국이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를 원한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한국은 시장이 작아서 이미 포화상태다. 결국 성장 원동력은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

초대형 글로벌 로펌의 한 해 매출보다도 규모가 작은 한국의 소송 시장을 지키는 데 급급해한다면 한국 로펌의 글로벌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가능성, 아시아 분쟁 해결의 허브=김갑유 변호사는 “한국은 한미 FTA 체결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ISD)가 도입되면서 FTA나 양자투자협정(BIT)에 관련된 국제 중재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국제 중재가 가장 활발한 나라의 하나로 부각돼 있다는 것.

김 변호사는 “이미 한국이 보유한 국제 중재 분야에서의 경험과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등의 이점은 한국이 아시아 지역의 국제 중재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대형 로펌들이 아시아 지역 로펌들 간의 연대와 블록화를 주도할 수 있는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김갑유 파트너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배 김 & 리) △국제중재 전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LLM) 졸업, 뉴욕 주 변호사


○알렌 김 파트너 변호사

△시들리 오스틴(홍콩) △국제중재·통상 전문 △미국 조지타운대 로스쿨(JD) 졸업. 캘리포니아 주 변호사


○박진혁 파트너 변호사

△심프슨 새처 & 바틀릿(홍콩) △국제 인수합병(M&A) 전문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JD) 졸업, 뉴욕 주 변호사


○에릭 윤 파트너 변호사

△화이트 & 케이스(미국 뉴욕) △미국 유럽 시장 국제금융 전문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JD) 졸업, 뉴욕 주 변호사


○한진덕 파트너 변호사

△클리어리 고틀리브 스틴 & 해밀턴(홍콩) △국제 기업공개(IPO) 전문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JD) 졸업, 뉴욕 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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