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성호]‘특허괴물’에 대처하자

  • 입력 2007년 4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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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합의 이후 국내외 법률시장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유형의 법률 분쟁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실제 사용하지 않을 특허를 선점한 다음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합의금을 받아 내는 특허소송 전문기업(이른바 ‘특허괴물’)의 폐해가 지적되고, 그 대책의 하나로 특허가 될 만한 기술을 찾아내 특허로 등록한 뒤 ‘특허맵’을 만들어 활용하는 방안이 동아일보에 보도됐다.

미·유럽·日특허분쟁 조사 급선무

특허괴물의 출현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 이후 불어 닥친 특허 중시(Pro-Patent) 풍조에 편승해 1980년대부터 거액의 로열티만을 받아 챙기는 ‘특허전문 브로커’나 특허관리회사를 빙자한 ‘특허 마피아’가 출현했다. 이런 배경에서 특허 분쟁의 사전 대비책으로 특허맵 작성을 통한 방어가 거론됐다.

한국의 특허청은 15, 16년 전부터 이런 문제점을 인식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을 지낸 김철수 씨가 특허청장으로 재직 중이던 1991년 특허청 산하 조직이 펴낸 ‘국제산업재산권분쟁’이란 책자에서 특허 전문 브로커의 폐해를 지적하고 특허맵 작성을 방어책으로 소개했다. 대다수의 지식재산권 전문가가 예전부터 지적하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점은 문제의 인식과 대책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다.

정부 차원에서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는 선진 무역시장인 미국 유럽 일본에서 벌어지는 특허를 비롯한 지식재산권 관련 중요 분쟁 상황을 연도별 업종별 부문별로 조사해 국내 기업에 제공하는 일이다. 선진 무역시장에 이미 진출했거나 앞으로 진출하려는 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조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체계성과 지속성이 없었고 몇몇 연구기관 중심으로 수행된 조사조차 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정부 차원에서 이런 정보를 계속 제공하면 어느 정도 자체 대비책을 강구해 온 대기업보다는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에 크게 유용할 것이다.

관계는 물론이고 학계와 업계에 분산된 지식재산권 전문가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지식재산권은 특허 상표 디자인 등의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으로 크게 나뉜다. 같은 특허 분야라도 기계 전자 화학 등 세분된 영역마다 다수의 전문가가 퍼져 있다. 어느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다른 분야까지 두루 전문가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가 적소에서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관련 업체에 제공할 필요가 있다. 특허맵은 분야별 전문가의 조력 없이는 작성이 불가능하다.

정부 차원의 이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옥상옥으로 별도의 기구를 만들기보다는 지식재산권을 관장하는 부처별로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공유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별도의 기구를 만들려다가 운영 주체를 누가 관장하느냐를 둘러싼 힘겨루기 때문에 자칫 비효율성만을 극대화할 수 있다.

전문가 DB구축 특허맵 작성 나서야

한편 미국법 중심으로 재편되는 세계 법률시장을 고려할 때 지식재산권 전문가의 양성 과정도 재점검할 점이 있다. 다시 말해 법학이 아닌 다른 전공 출신이 입학할 수 있는 미국 로스쿨의 JD 같은 교육과정으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비용과 기간, 어학 문제 때문에 미국의 JD 졸업생 또는 외국의 법학 전공자가 들어갈 수 있는 LLM 교육과정을 선호했다. 특히 정부 기관이나 대기업은 JD 과정 및 LLM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한 명실상부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도록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펼칠 필요가 있다.

박성호 한양대 법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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