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막판 美 몸달았구나 판단…버티기 작전 돌입”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종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수석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협상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새벽 서울 광진구 광장동 자택에서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한미 FTA와 관련된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김동주 기자
김종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수석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협상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새벽 서울 광진구 광장동 자택에서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한미 FTA와 관련된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김동주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의 주역 중의 주역인 김종훈(사진) 한국 측 수석대표. 본보 취재팀은 4일 새벽 김 대표의 서울 광진구 광장동 자택을 찾아가 하나라도 더 국익을 챙기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 김 대표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김 대표는 △한미 FTA의 의미 △협상 성공 전략 △긴박했던 막판 협상 타결 과정 등을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또 미국이 마지막까지 쌀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는 사실 등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도 소개했다.

4일 0시 반경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한 빌라 앞. 김종훈(55)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수석대표가 탄 승용차가 멈췄다. 김 대표는 쌀쌀한 날씨 때문에 한기(寒氣)를 느끼면서 기다리던 본보 기자들을 보자 “마침 오늘이 딱 열흘 만에 귀가한 날”이라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피 말리는 막판 협상의 주역이었던 그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차 한 잔 마시러 왔습니다”라고 하자 “일단 들어갑시다”라며 거실로 안내했다. 부인 김현지(54) 씨가 차와 과일을 내왔다.》

오전 2시가 넘을 때까지 계속된 김 대표와의 심야 단독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엔 다소 주저하던 김 대표는 시간이 흐르자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인터뷰 도중 그는 한미 FTA 반대파를 겨냥한 듯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겠다는 식의 논리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 가면 (나라의) 앞날이 없다”고 강조했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살고자 하면 죽고, 죽을 각오로 임하면 산다)’의 마음으로 마지막 협상에 나섰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미 FTA 타결의 의미부터 설명해 달라.

“뭘 주고받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에게 ‘한국은 앞으로 개방과 경쟁으로 간다’는 큰 메시지가 전달된 게 제일 중요하다. 덩치 큰 미국이든 뭐든 상대에 관계없이 개방과 경쟁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커진다.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국가의 대사관에서 미국과의 FTA 협상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며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이겠는가.”

―협상 결과에 대해 총평을 하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가 너무 많이 얻었다.(웃음) 3일 웬디가 떠나기 전에 만났는데 ‘나는 비행기 타고 돌아갈 때 뭐 가져가냐’고 하더라. 실제로 미국은 가져가는 게 별로 없다. (미국의 관심이 컸던) 쇠고기도 ‘앞으로 풀어 보자’는 선에서 합의했다. 농업도 한국의 민감 품목은 전부 10∼15년의 시간을 벌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면 될 것이다.”

김 대표는 웬디 커틀러 미국 측 협상단 수석대표를 ‘웬디’라 불렀다. 김 대표의 부인은 “웬디는 협상 타결 발표 때 당신 칭찬 많이 하던데 당신도 좀 하지 그랬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얻어 냈다는 얘긴가.

“하나도 안 주고 많이 받아서 좋다는 것은 바른 시각이 아니다. FTA에서는 균형이 맞는 게 제일 좋다. 저쪽은 어차피 상품 시장이 열려 있으니까 물건 팔 수 있는 것은 농산물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쪽 농림부 민동석 차관보와 배종하 국제농업국장이 정말 잘했다. 우리는 또 미국에 지식재산권, 투자자 보호, 투명성 등을 양보한 셈인데…. 해외 투자를 유치하려면 인센티브는 고사하고 번 돈을 안 뺏어 간다는 보장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당연히 분쟁해결 절차(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가 있어야 한다. 미국은 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네 업체들이 한국과 교역할 때 절차상 불투명 문제가 많다고 불만을 나타낸 모양이더라.”

―미국이 가장 민감했던 부분은….

“픽업트럭이 미국으로선 한국의 ‘쌀’과 같았다. 죽어도 못 준다고 했다. 그러나 픽업트럭 관세를 현행 25%에서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우리는 아직 픽업트럭을 안 만들고 있지만 5년 정도면 새로 생산라인을 깔 수 있다. 그때면 관세가 12.5%로 떨어진다. 미국 픽업트럭 시장이 연간 370만 대이고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15%인데 앞으로 큰 시장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협상 타결의 실마리는….

“지난달 30일 미국이 협상장에 도착하자마자 내놓은 협상안은 형편없었다. 자동차는 ‘머리 뚜껑이 열릴 정도로’ 엉망이었다. 서로 ‘버티기’ 하다가 저쪽에서 48시간 더 하자고 하더라. 이때 ‘내용은 어떻게 되더라도 협상은 무조건 타결된다’는 판단이 섰다. 미국이 몸이 달았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 버티기로 일관했다. 결국 미국은 쌀을 포기했다. 언론에서는 쌀 요구가 없었다고 보도했지만 실제 협상장에서 미국은 끝까지 요구했다. 그리고 미국이 자동차 관세도 양보해 즉시 폐지하기로 하면서 나머지는 다 풀렸다. 협상은 2일 오후 12시 40분에 끝났다.”

부인 김 씨는 “협상 시한 연장을 두고 일부 언론은 미국 전략에 말렸다고 비판하더라”며 서운한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 지난해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아들이 울산 공장에 연수 갔다가 “현대차 노조가 ‘김종훈은 김완용’이라고 비방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고 전화했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협상 성공 전략을 소개해 달라.

“하나 예를 들자면 지난해 12월 미국 몬태나에서 5차 협상을 할 때 무역구제 비(非)합산 조치(반덤핑 조치 발동을 위한 산업피해 판정 때 한국산은 분리해서 평가)를 내놓으라고 하니까 저쪽이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 속으로 ‘아, 됐다’고 생각했다. 줄기차게 요구해 값을 엄청 키워 다른 것이랑 주고받기해야겠다 싶었다. 결국 이 덕분에 미국이 요구한 신약 최저가 보장을 거부하고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에서 부동산과 조세정책을 제외할 수 있었다. 다만 비합산 조치 값을 잔뜩 올려놓았을 때 문건 유출 사건이 터져 미국이 우리의 전략을 간파했다. 결과는 생각대로 됐지만 당시는 굉장히 화가 났다. 마지막 협상을 서울에서 한 것도 큰 도움이 됐는데 이는 작전이었다. 지난해 3월 웬디랑 처음 협상 일정을 짤 때부터 계산에 넣었다.”

―앞으로 계획은….

“나는 협상대표인데 이제 협상이 끝났으니 글쎄…. EU와의 FTA 협상은 후배들이 해야 하고. 아직 잘 모르겠다. 참고로 한미 FTA 협정문은 법률적 문안 검토 작업을 거친 후 6월에 서명한다. 가(假)서명했다는 보도가 있는데 미국에는 가서명 제도가 없다.”

김 대표에게 개인적 스토리도 물어보았다. 그는 대학생 때 방학을 이용해 고향인 대구에서 가정교사를 했는데 부인 김 씨가 제자였다. 부인은 김 대표의 노래 실력에 반해 결혼했다며 남편의 별명이 ‘김 몽땅’이라고 소개했다. 트로트부터 프랑스 가수 이브 몽탕의 샹송까지 온갖 노래를 잘 부르는데 단골 애창곡이 이브 몽탕의 ‘고엽’이라는 것.

부인 김 씨는 협상 기간 매일같이 남편이 갈아입을 옷을 전달하러 협상장을 찾았으나 한 번도 남편의 얼굴을 못 봤다고 한다.

얼굴이 너무 알려져 불편한 점은 없을까. 김 대표는 “설렁탕 먹었는데 식당 주인이 돈도 안 받겠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이 말에 곁에 있던 부인이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불편해진 점도 많아요. 이제 어디가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 김종훈 한미 FTA 한국 측 수석대표는

△1952년 대구 출생 △1975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74년 외무고시 8회 합격 △1974년 외무부(현 외교통상부) 근무 시작 △1993년 주미 대사관 경제참사관 △1998년 주제네바 공사 △2000년 외교부 지역통상국 국장 △2002년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 △2004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고위관리회의 의장 △2006년∼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