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2011]선수가 뜨면 우리도 뜬다…‘효자잡기’ 장외대결 치열

  • 입력 2007년 4월 2일 0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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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아경기 육상 여자 200m 결승.

흰색 히잡(이슬람 여성이 외출할 때 얼굴이나 가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쓰는 가리개)을 두른 한 선수가 무서운 막판 스퍼트를 앞세워 1위로 골인했다. 그 주인공은 바레인의 루카야 알가사라였다.

금메달을 목에 건 알가사라의 히잡 옆에는 커다란 나이키의 ‘스워시’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이 히잡은 스폰서인 나이키가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첨단 소재로 특별 제작한 것이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착용하는 히잡에도 자사 로고를 붙인 나이키의 절묘한 상술은 혀를 내두르게 했지만 아시아 전역에 생방송되면서 그 노출 효과만은 만점을 주고도 남았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이처럼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업체들의 경쟁이 트랙과 필드를 더욱 뜨겁게 달굴 것으로 전망된다.

대회가 열리는 9일 동안 전 세계 65억 명의 시선을 끌어 모으게 돼 자사 제품을 널리 알리는 데는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

육상 스타들은 이미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글로벌 스포츠 용품 업체의 대리전에 발 벗고 뛰어든 지 오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승에서 모리스 그린(미국)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황금색 나이키 육상화를 벗어 관중석에 던졌다. 이 세리머니는 지구촌 수십억 시청자에게 ‘나이키=최고’라는 강렬한 인식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일본의 노구치 미즈키는 TV 카메라 앞에서 아식스 마라톤화를 벗어 들어 입까지 맞췄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스폰서를 더 부각시키려는 의도적인 행위였다.

이처럼 스포츠 용품 업체들은 스타 마케팅을 위해 수백만에서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스폰서 비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계약 선수의 성적에 사활을 걸기도 한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투자를 통해 뛰어난 기능성을 지닌 제품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소속 선수의 기록이 신통치 않다면 구매자의 관심을 끌기 어려워 매출 증대까지 이어지기는 힘들어진다.

아디다스는 여자 장대높이뛰기 슈퍼스타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를 비롯해 2005년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400m 금메달리스트 제러미 워리너(미국), 여자 단거리의 간판 앨리슨 펠릭스(미국) 등 10여 명의 별을 지원하고 있다.

나이키 역시 스타들을 앞세워 자사 제품을 알리는 데 열을 올린다. 현재 아사파 파월, 저스틴 게이틀린, 매리언 존스(이상 미국), 폴 터갓(케냐)을 비롯해 중국의 허들 영웅 류샹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거물들이 즐비하다.

스포츠 과학의 발달에 따른 첨단 제품의 등장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나이키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호주 원주민 출신 육상 선수 캐시 프리먼에게 몸에 착 달라붙는 전신 속도복 ‘스위프트 슈트’를 입혀 화제를 모았다. 주요 대회 때마다 뛰어난 기능성의 제품을 내놓은 아디다스는 달리는 속도와 바닥의 쿠션에 따라 최적의 편안함과 균형을 유지해 준다는 인공지능 쿠션 시스템의 러닝화 ‘원 DLX 러너’를 다음 달에 출시할 계획.

올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우승한 이봉주는 5년째 아식스가 1억 원에 가까운 투자비를 들여 자신의 발 모양에 맞춰 특별 제작한 마라톤화를 신고 뛴다. 아식스는 ‘이봉주 효과’로 장거리 육상의 전문 브랜드로 이미지를 끌어올리며 국내 마라톤화 시장을 절반 가까이 석권하기에 이르렀다. 아식스는 대한육상경기연맹과 2010년까지 장기 후원계약을 한 상태.

스포츠 용품 업체들은 4년 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빛낼 효자 선수를 찾기 위해 벌써부터 공을 들이고 있다. 뛰어난 기량을 지닌 유망주라면 조기 투자도 마다하지 않는다.

메달 색깔을 바꿀 수 있는 0.001초의 기록이라도 앞당기기 위한 연구 개발 활동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상한가를 쳤던 국내 스포츠 브랜드 역시 최근 다국적 기업에 밀린 데 따른 고전에서 벗어나 재도약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대구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스포츠 용품 업체들의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된 듯하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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