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수석대표 “한미, 이제 진짜 주고받기 해야”

  • 입력 2007년 3월 22일 02시 59분


코멘트
“산이 아무리 높아도 넘을 수 있습니다.”

김종훈(사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 측 협상단 수석대표의 목소리는 명쾌했다. 등산광(狂)인 그는 ‘협상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됐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김 대표는 20일(현지 시간) 오후 8시경 협상장인 미국 워싱턴 르네상스 메이플라워호텔 주변의 중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녁 식사를 겸한 간담회를 열고 협상 진행상황과 전망, 각종 비판 여론에 대한 소회(素懷) 등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민감한 쟁점에 대한 질문에는 극도로 말을 아껴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실감케 했다.

○ “이제는 빅딜을 해야 하는 순간”

―고위급 협상은 어느 정도 진척됐나.

“이제 나올 게 다 나왔으니까 주고받기를 진짜로 해야 한다. 그동안 가정을 전제로 아이디어를 교환했다면 이제는 이거다 싶으면 실행에 옮겨야 한다.”

지난해 6월 한미 FTA 1차 협상을 시작으로 10개월 동안 ‘한국이 A를 준다면 미국에서 B를 달라’는 식의 협상을 했다면 이제는 ‘가정’을 떼고 실제로 주고받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빅딜 대상은 어떻게 타결되나.

“당구에서 한 번 쳐 서너 개의 공이 연달아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농업처럼 민감한 분야가 풀리면 해결되는 쟁점들이 있다.”

양국은 협상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해 자동차 섬유 농업 통신 등 핵심 쟁점을 모아 패키지(묶음)로 엮어 서로 ‘이익의 균형’을 취하는 방식으로 일괄 타결을 모색하고 있다.

―통상장관급 회담에서 쟁점이 모두 타결되나.

“한두 개 쟁점은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않고 남을 수 있다. 시간을 끄는 쟁점들은 ‘건설적인 모호성(constructive ambiguity)’을 담아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 등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은 ‘나중에 논의하기로 한다’는 식이다.

○ 딜 브레이커 1, 2개 더 있다

김 대표는 전반적인 협상 타결을 낙관하면서도 “앞으로 큰 고개가 엄청 많이 남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서울과 워싱턴에서 자동차 농업 섬유 등에 관해 고위급 회의가 열리고 있지만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농업도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발언을 했는데….

“농업은 중요하다. 그러나 협상 창구가 여러 개면 안 된다. 장관이 자꾸 나서면 곤란하다.”

김 대표의 이런 발언은 최근 박홍수 농림부 장관이 농업 분야 개방에 반대한다고 여러 차례 말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섬유와 농업 분야 협상은 끝까지 따로 하나.

“통상장관급 회의 초반에는 따로 하다 중반에 들어서면 한꺼번에 다루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농업과 섬유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해 서로 빅딜을 하지 않을 것이다.”

○ ‘포천 쿠키’의 덕담, “이젠 실행에 나서야”

김 대표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치권에서 ‘한미 FTA는 마이너스 FTA’라든가, ‘FTA를 체결하려면 나를 밟고 가라’는 등 반대 발언이 나오는데….

“(그런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겠느냐.”

―한국이 너무 많이 내준다는 의견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 미국이 훨씬 많이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옷을 겹겹이 껴입은 사람과 홑옷을 입은 사람을 같이 비교할 수는 없다. 한 예로 서비스 분야 협상 초반에 한국은 서비스 분야 개방 제외 목록(유보안)으로 90여 개를 올렸지만 미국은 20개 안팎에 그쳤다.”

미국 시장이 더 많이 개방돼 있어 한국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는 국가는 개방이 덜 된 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얘기다.

식사가 끝나가자 테이블에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포천 쿠키’가 후식으로 나왔다. 쿠키 안에는 덕담이 적혀 있다.

김 대표가 집어 든 포천 쿠키의 덕담은? ‘심심풀이’지만 관심이 쏠렸다. 쿠키를 깨고 돌돌 말린 종이를 펴 보니 ‘아이디어만 짜지 말고 이제 실행에 옮겨라’는 문구가 나왔다.

한미 FTA 타결 시한이 열흘가량 남은 지금 ‘막바지 협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김 대표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서려 있었다.



워싱턴=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자동차협상 평행선

농업에 이어 자동차 시장 개방 문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막바지 협상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자동차 분야 협상의 핵심은 관세 폐지 여부.

한국 측은 미국에 자동차 관세(평균 2.5%)를 3년 이내에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자국의 관세를 없앨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이혜민 외교통상부 한미 FTA 기획단장도 “자동차 분야의 협상이 가장 더디다”며 “양국이 전혀 의견 접근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자동차 관세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이번 FTA를 통해 한국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이 자동차 부문에 있기 때문. 전문가들은 FTA가 체결돼 단계적으로 미국의 관세가 폐지되면 한국은 2015년까지 대미(對美) 자동차 수출을 21억 달러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의견은 크게 다르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2005년 한국은 미국에 73만863대, 미국은 한국에 5795대의 자동차를 수출했다.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관세 폐지 외에 한국의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제 개편, 비(非)관세 장벽 철폐 등이 필요하다는 게 미국의 생각이다.

워싱턴=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