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옵션제는 제로섬 게임?

  • 입력 2007년 3월 12일 02시 59분


코멘트
“어! 집을 짓다 말았네.”

2, 3년 뒤 신규 아파트 입주자들은 자기 집을 처음 구경할 때 숨이 턱 막힐지도 모르겠다. 세련되고 우아한 인테리어를 기대했는데 웬걸?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벽에, 전등 한 개도 달려 있지 않은 밋밋한 천장….

정부가 9월부터 도입하기로 한 ‘마이너스 옵션제’가 시행되면 이런 일이 현실이 된다. 마이너스 옵션제는 아파트 내부 마감재를 입주자가 개별적으로 설치하는 것. 분양가에서 마감재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 값을 낮추겠다는 의도다.

이와 별도로 이미 인천시는 조례를 개정해 지난해 9월 20일 이후 사업승인을 신청한 아파트는 의무적으로 마이너스 옵션제를 시행토록 했다. 논현지구 한화에코메트로 2차(4238채)와 송도신도시 GS자이(1069채)가 인천에서 처음으로 마이너스 옵션제 적용을 받는다.

○수도꼭지까지 입주자가 시공

마이너스 옵션은 대한주택공사가 지난해 8월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에서 연립주택 376채를 분양하면서 시범 실시한 바 있다.

바닥 공사에서는 온돌과 발코니 타일 정도만 시공해 주고 마루나 욕실 타일, 현관 대리석은 모두 입주자가 설치해야 한다. 욕실에도 냄새를 뽑아내는 환풍기만 달려 있다. 수도꼭지, 양변기, 세면기, 거울은 모두 입주자가 직접 구입해 시공해야 한다.

전기 부문도 콘센트와 스위치만 미리 시공해 줄 뿐 전구와 간접조명을 위한 일체의 배관·배선공사가 입주자 몫이다.

마이너스 옵션을 선택했을 때 입주자가 내는 분양가는 6∼7%가량 줄어든다. 46평형은 분양가가 6억9210만 원이지만 4090만 원을 깎아주는 식이다.

○세금 줄이고 마감은 최신형으로

마이너스 옵션의 장점은 분양가 인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분양가가 떨어지면 세금도 줄어든다.

주공 연립주택 46평형(6억9210만 원)을 원래 가격으로 분양받았다면 취득·등록세(전용 25.7평 초과는 분양가의 2.7%)가 1869만 원. 하지만 마이너스 옵션을 적용해 분양가가 6억5120만 원으로 줄어들면 취득·등록세는 1758만 원으로 세금만 111만 원을 아낄 수 있다.

여기에 대출금이 줄어들어 이에 따른 이자비용도 감소한다.

마감재를 최신 유행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2년 6개월 뒤에 입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완공 시점에 새로 나온 마감재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입주 시점에 기존 인테리어가 맘에 들지 않아 전부 뜯어내고 새로 설치하는 데 따른 비용도 아낄 수 있다.

○푼돈 줄이려다 목돈 들 수도

하지만 마이너스 옵션이 생색내기용 분양가 인하 방안이라는 지적도 많다.

주공의 사례에서 보듯 마이너스 옵션 항목은 대부분 주택에 꼭 필요한 마감재들이다. 옵션이라면 선택 가능한 항목들로만 구성돼 있어야 하는데 벽지에서 수도꼭지까지 반드시 있어야 할 품목들을 빼버려 입주자가 나중에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개별적으로 자재를 사 시공하면 건설사가 대량으로 구매해 설치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든다는 단점도 있다.

주공 판매팀 신동은 차장은 “주공에서 시공하는 자재와 똑같은 수준으로 입주자가 마감재를 선택한다면 인건비까지 포함해 최소한 10∼20%는 비용이 더 든다”고 말했다.

소규모 인테리어 업자에게 마감재 시공을 맡겼다가 나중에 하자 보수를 제대로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건설사들이 마이너스 옵션제를 이용해 편법적으로 분양가를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각종 필수 마감재를 옵션으로 배정해 놓고 입주 시점에 별도의 공사비를 내는 조건으로 건설사가 일괄 시공하는 변종 마이너스 옵션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K사는 경기 용인시에서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발코니 확장을 신청한 계약자들에게 에어컨과 아트월, 주방가구 등을 무조건 설치토록 해 수천만 원을 추가로 내게 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