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형아파트 임대하겠다더니…10개월간 한채도 매입못해

  • 입력 2007년 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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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임대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겠다며 잇달아 발표한 부동산 대책들이 사실상 좌초하거나 아직 구체안이 마련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장원리를 외면한 ‘책상머리 발상’에 준비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한주택공사가 7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박승환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자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3·30대책’에서 수도권 도심에 있는 중대형 아파트(34∼50평형) 6300채를 사들여 임대용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단 한 채도 매입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정부는 주공을 통해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300채를 구입해 중산층 임대수요자에게 공급하고 올해부터 2012년까지 매년 1000채씩 추가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주공이 지난해 9월 13일 매입공고를 낸 뒤 접수한 매도신청 물량은 19채에 그쳤다. 그나마 신청 물량을 한 채도 사들이지 못했다.

주공 측은 “지난해 집값이 올라 신청이 철회될 수 있어 매도 의사를 다시 확인한 뒤 감정을 시작할 예정이어서 매입이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매도 신청 자체가 집을 팔겠다는 최종 의사라는 점에서 이 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공 관계자도 “매입 대상인 500채 이상 대단지, 준공 10년 이내의 멀쩡한 아파트를 감정가로 팔 사람이 있겠느냐”며 “정부가 목표를 과도하게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계획대로라면 주공은 올해에도 1000채를 매입해야 하지만 예산조차 책정하지 않아 사실상 사업을 포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체 예산 책정도 상식에 어긋난다. 매입 가격을 채당 3억4700만여 원(총 2조1868억 원)으로 일괄 책정해 2012년까지의 집값 상승률은 고사하고 물가상승률조차 반영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집값은 떨어질 때도 있고 오를 때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1·31대책’에서는 집값이 연평균 3%씩 오를 것을 전제로 비축용 임대아파트의 10년 뒤 매각 가격을 정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논리를 뒤집고 있음을 보여 줬다.

1·31대책도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공공펀드를 조성해 짓기로 한 30평형대 비축용 임대아파트에 대해 △건설원가 1억8000만 원 △임대보증금 2500만 원 △월 임대료 52만1000원을 제시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건설원가는 평당 600만 원으로 주공이 분양한 판교신도시 아파트 값(평당 1200만 원)의 절반에 그친다. 임대보증금도 판교 임대아파트(1억4000만 원)의 14%에 불과한 데다 월 임대료도 6만 원가량 낮다.

비축용 임대아파트는 펀드에 연 6%가량의 수익률을 보장해 줘야 하기 때문에 임대료 등을 싸게 매기는 데 한계가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사실 1·31대책에서 예로 든 가격은 극단적으로 값이 싼 상황을 상정한 것으로 실제 그렇게 공급될지는 불투명하다”며 “아직까지 세부방안을 확정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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