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땅·땅값 때문에…”서울 경기 APT 사업비 70%까지 차지

  • 입력 2007년 2월 6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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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값만 낮춰 주면 정부가 하라는 대로 분양가 낮출 수 있어요”

부동산 시행사 대표인 양모 씨는 2005년 11월부터 경기 파주시에서 아파트용 토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2만여 평을 사 800채가량을 지으려 했지만 1년여 만에 포기했다.

뛰어오르는 땅값 때문에 두 손 들었다. 초기엔 평당 80만 원짜리도 있었지만 지금은 250만 원에도 안 팔겠다는 지주가 많다. 그나마 올해 9월부터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되면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

양 씨는 “땅값을 낮춰 주면 정부가 하라는 대로 분양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토지시장은 내버려두고 분양가만 억누르니 어떻게 사업을 하라는 것인가”라고 항변했다.

정부의 잇단 부동산 대책으로 집값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수도권 땅값은 여전히 고공(高空)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땅값을 낮춰 주지 않으면 주택 사업을 할 수 없다며 정부에 대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본보가 5일 입수한 3개 시행사의 자체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땅값이 전체 사업비의 70%에 이르는 사례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분양가의 딜레마

A사의 사업계획서를 보면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계획 중인 아파트 단지(59평형 56채)의 총사업원가는 990억 원.

이 가운데 순수한 땅값은 524억 원(평당 평균 3500만 원), 자금조달에 따른 이자는 110억 원(분양완료 시점까지 산정)으로 토지비 비중이 원가의 64%나 된다. 반면 높은 분양가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건축비 비중은 27%에 그친다.

A사는 8% 안팎의 수익률을 낸다고 계획하고 분양가를 평당 3500만 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지난달 역대 최고가에 분양했던 GS건설의 서초아트자이(평당 3395만 원)보다도 높다.

수익률을 5%로 줄이고 공사비를 평당 500만 원에서 350만 원으로 깎아도 분양가 인하 폭은 평당 490만 원에 불과해 여전히 3000만 원을 웃돈다. 땅값이 그대로인 한 분양가를 대폭 낮추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B사가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지을 예정인 아파트도 마찬가지. 평당 토지 매입가격이 1600만 원이나 돼 전체 사업비에서 땅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웃돈다. B사가 이 사업에서 5%대의 수익을 올리려면 분양가가 2000만 원은 넘어야 한다.

C사는 파주시 금촌동에 아파트를 지으려다 땅값 때문에 결국 사업을 접었다. 평당 택지비가 220만 원으로 서울과 비교하면 싼 편이지만 분양가를 평당 600만 원 이상 받기 어려워 2%대의 수익도 건지지 못할 것으로 추산됐기 때문이다.

이 사업의 건축비 비중은 68%로 상대적으로 높지만 건설규모(780채)가 커서일 뿐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게 C사의 설명이다.

○ 수도권 땅값 요지부동… 아파트 공급 위축 불가피

서울과 경기 일대 땅값이 높은 이유는 무엇보다 쓸 만한 토지가 부족하기 때문. 여기에 땅 주인들은 대부분 예전부터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주택경기가 가라앉더라도 굳이 싼값에 땅을 넘기려 하지 않는다.

올해부터는 비사업용 토지의 양도소득세가 60%로 높아지면서 땅 주인이 세금부담을 매수자에게 전가하거나 아예 땅을 안 팔겠다고 버티는 사례도 많다.

또 상반기 중 확정되는 ‘분당급 신도시’ 발표를 앞두고 개발 기대감이 팽배해 있는 데다 선거철이면 으레 쏟아지는 각종 개발공약도 땅값이 낮아지지 않는 요인으로 꼽힌다.

시행사인 솔렉스플랜닝 장용성 사장은 “땅 주인들이 돈이 급한 것도 아닌 데다 지금 팔아봤자 세금만 무는데 왜 싼값에 땅을 팔겠느냐”고 말했다.

황용천 해밀컨설팅 사장은 “땅값이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될 예정이어서 민간 업체들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며 “아파트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선호 건설교통부 주택정책팀장은 “민간 업체가 땅을 50% 이상 사면 공공부문이 나머지 토지를 수용해 사업하는 방안 등 땅값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정책 수단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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