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좇는 묻지마 투자 열풍

  • 입력 2007년 1월 18일 16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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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汎) LG가문 3세 구본호 씨가 인수한 액티패스 주가는 지난해 12월 26일 첫 상한가(2925원) 이후 18일(1만7700원)까지 무려 5배 이상 급등했다.

이것만 아니다. 18일 증시는 유명인이 투자한 종목의 상한가 행진으로 크게 술렁였다.

구 씨가 투자한 소프트포럼도 덩달아 사흘째 상한가로 치솟았으며, LG가문 일원인 구자극, 구본현 부자(父子)가 대표라는 사실이 알려진 엑사이엔씨도 이날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구자극 씨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동생이다.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아트라스BX도 이날 이틀째 상한가 행진을 이어갔다.

코스닥시장이 연초부터 '유명인 테마'로 요동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유명인 테마주 투자는 위험하다고 경고하지만, 개미투자자들은 '귀를 막는' 양상이 재연되고 있다.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

회사원 박 모(41)씨는 지난해 유명인을 좇아 투자를 했다 큰 낭패를 봤다.

'뉴보텍'이란 업체가 '주식회사 이영애'를 설립하고, 이영애 씨 오빠와 공동 경영에 나선다는 소문을 듣고 덜컥 5000만 원을 투자한 것.

이후 이는 허위로 판명됐고, 주가가 급락하면서 박 씨는 말 그대로 '생지옥'을 경험했다.

평소 주식 투자에 큰 관심이 없었던 그가 이렇게 과감하게 '질렀던' 이유는 뭘까.

박 씨의 이야기다.

"공시가 나기 한 달 전 이 회사에 이영애가 참여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가가 조금씩 오르는 거예요. 믿을만한 지인도 추천했고요. '이거다' 싶었죠. 삼성전자 같은 우량주는 오르는 폭이 너무 적잖아요. 이영애가 움직인다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전문가들은 연예인이나 재벌 2, 3세 등 유명인의 움직임에 따라 주가가 출렁이는 것은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으로 풀이한다.

외국에서도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손정의 등이 투자한 기업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있지만, 이들은 전문 경영인이나 전문 투자자라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있다.

●'주가 상승 막차 탈 가능성 높아'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위원은 "코스닥 시장 투자자는 90%가 개인인데, 이들은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와 달리 정보가 부족해 루머나 직감에 의존해 의사 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대기업 인사와 관련된 기업은 해당 기업과 안정적인 거래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인식도 '묻지마 투자'를 낳는 요인이다.

특히 코스닥 기업은 대형주들와 달리 최고경영자(CEO)나 등기 임원이 누구냐에 따라 경영 환경이 바뀔 수 있고, 이런 재료는 곧바로 주가에 반영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유명인 테마주들은 대부분 초기 상승세를 타다가 급락하는 경우가 많다. 뉴보텍은 지난해 4월말 6800원 대에서 현재 1890원으로 주저앉았다.

배용준이 투자한 키이스트도 지난해 4월초 8만6000원대에서 최근 7000원대로, 장동건이 주요 주주인 스타엠은 지난해 5월 1만7000원대에서 최근 3000원대로 각각 급락했다.

대신증권 봉원길 연구위원은 "유명인 관련 종목을 추격 매수하는 것은 매수 시점이 주가 상승 기류의 '끝물'일 수 있다는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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